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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칼럼
맨발걷기는 숲과 함께 만들어가는 상호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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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짜: 2025년 07월 09일
제목 차이(항법과 항해술)
글쓴이:미지수  번호: 2035 번글   조회: 1049   추천: 99   

차이(항법과 항해술)


바다를 항해하는 항해술은 기초적인 항법을 먼저 알아야 바른 항해로 항해술은 필요한 현실로 항해술보다 배가 바다에서 바른 항해를 하기 위해선 먼저 기초적인 항법이 필수적인 부분으로 항법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항해를 할 수 있다고 가는 현실이라면 어떠한 문제가 있어 발생하는 것일까? 바르게 아는 거와 바르게 알지 못하고 안다는 사실은 분명한 다른 차이가 있음으로 다수적인 현실과 다른 문제의 현실이 있음으로 바른 지식은 무엇인지 지식에 대한 문제는 분명한 스스로의 주체가 되는 현실이 있음으로 권력은 무엇이며 누구를 위해 필요한지 바른 지식을 배워 바른 지식을 갖추어 겸비하지 못한 문제의 인물들이나 물질적인 부분으로 권력을 추구하는 사회적인 다수적인 현실로 좋다는 현실의 집단으로 집행하는 현실이면 어떠한 문제의 현실이 발생하는지에 대한 현실을 가지고 보면 분명한 문제가 되는 되풀이의 문제는 있을 수밖에 없으며 그로 인하여 발생하는 현재와 다른 다음에 대한 대립과 갈등이나 마찰로 발생하는 비참한 비극이나 스스로 자멸하는 문제의 현실이 있음으로 사랑은 사랑이 아니고 바른 지식으로 권력에 해당하는 나만의 시각에 해당하는 명령적인 권력으로 자행하는 만용이나 권력에 대한 현실에 대한 언론적인 형상적인 무대적인 현실로 조명하는 환경을 가지고 등장하여 조명하여 보이는 언론은 문제가 많은 언론으로 그것은 언론이라고 해도 언론도 아닌 현실로 언론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바르다고 정당화할 수 없는 문제는 현재에 있음으로 바른 지식으로서의 스스로의 주체인 해설에 대한 분명한 해법의 조명이 따라 주는 기초적인 스스로의 주체가 되는 바른 해법이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 부분이 서로의 바른 소통이나 마찰을 방지하여 되풀이의 문제를 없애는 바른 질서에 대한 다수를 모두 포함하여 좋은 소통으로 바르고 진보하여 갈 수 있는 진보적인 길의 현실로 항해로 아무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분명하고 너무 다르다는 사실이다. 누구나 쉽게 조그만 배우면 바다에서 배를 움직이는 항해를 할 수 있고 바다에서 배를 움직이어 간다는 사실은 눈의 시각으로 보면 별차가 없고 그의 자리나 입고 있는 옷에 따라 다른 차이의 문제도 많다.


항해에서 항법으로 바른 지식을 갖추어 겸비한 인물로 항해하여 가야하는 길로 그 길이 바른 정상적인 길이라면 그 길은 누구라도 포기할 수가 없는 길이다. 그 길이 그의 죽음이라고 해도 또 그 배를 타고 있는 다수적인 승조원들이 그를 죽이는 다양한 방법의 협박이나 죽음이라고 해도 가야 하는 그의 그 길이 그의 생명이다. 바른 정상적인 길을 가는 죽음은 죽음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을 열어주는 좋은 새 길이다.


좋은 길은 어디에 있으며 좋은 길을 알아 열어 주는 일이며 누구에 의하여 어떻게 열리는가? 좋은 새 길을 아는 이는 무엇을 어떻게 배워 아는 배운 배움으로서 좋은 새 길을 알아 열어주는 현실인가? 세상은 나에게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하여 주었지만 좋은 것은 어떠한 것이 좋으며 아름다운 것인지를 찾아 알 수 있게 하여 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에게 있어 세상에서 좋고 아름답다는 것을 찾을 수 있게 해준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었다.


다른 것은 다르고 다른 것은 분명하기에 다를 수밖에 없다. 검은 색으로 탄생한 것을 백색으로 가공하여 포장해 놓고 눈의 시각이나 사진적인 형상의 포장하여 놓은 포로나 노예들의 현실에 해당하는 시체적인 포장으로 하여 놓아 보이는 언론이나 다수적인 현실로서의 백색라면 그 진실에 대한 참의 현실을 가지고 보면 흑색과 백색은 다른 분명한 현실로 흑색을 가지고 백색으로 포장하여 놓아 백색이라면 인정할 수 있는 분명한 문제의 사실적인 가치에 대한 생명이 있어 알고 있는 현실로 백색이라 말하는 현재의 현실이라고 해도 바르게 아는 현실은 바른 지식으로 바르게 아는 스스로의 주체적인 현실의 사물이나 한 인물이며 존재이라면 백색이라고 말하여 줄 수 없다.


스스로의 주체는 바로 바른 지식에 있으며 그것이 바른 가치에 대한 생명이며 인권이다. 인권은 무엇이 바른 정상적인 인권인지 인권을 바른 지식으로 배워 알지 못하면 인권이라는 것은 허구나 거짓에 대한 장난과 같아지고 말 뿐이다. 지식은 그 지식에 대한 가치에 생명에 대한 그 가치에 대한 생명으로 존재하는 영원한 가치에 대한 좋은 생명이다. 타의 것은 타의 것이며 나의 것은 나의 것이다. 소유란 소유가 아니고 절대적인 것으로 도둑들이 자행하여 보이는 소유에 대한 현실과 다른 차원의 현실로 도둑질이 불가한 현실의 소유가 진정한 참 소유에 해당하는 현실로 모두의 것이며 나눔으로서의 자유와 평화로 과거나 현재나 똑 같은 하나의 유일한 단 하나의 동일한 시간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길은 길로서 혼자로서라도 가야하는 길이 있다면 그 사람은 가야하는 길이 그 사람의 길이다. 오고가는 것이 세월이며 자연이지만 변화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이 바른 참이고 진리다. 진리의 참맛은 아는 자만이 아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보석이 있다고 오늘날의 사회현실로 말하는 언론적인 현실의 조명이나 다수적인 현실로 보면 너무 다른 반대적인 현실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가지고 보면 진리가 무엇이며 정말로 참의 보석으로 아름다운 것을 알지 못하면 현재의 현실은 어떠한 문제의 현실로 등장일까?


세상의 진실은 단 하나다. 눈의 시각으로 보면 둘은 둘로 보이지만 그 둘은 둘이 아닐 수도 있다. 현재는 과거의 현실이 아니고 현재다. 길은 많아도 하나이며 바른 길이면 다른 수많은 길이 있다고 해도 바른 길로 가고 있다면 다시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현실이 존재하고 있기에 그 것이 생명이라는 현실이다. 그리고 바른 길은 가고 있는 현실이면 정상에서 다시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의 행복으로 정상에서 만나는 길이다.


좋은 길이라고 해도 길도 아닌 엉터리의 길로 가면서 좋은 길로 간다며 가고 있으며 어디로 가고 무엇을 만나고 싶어가는 것인가? 어디로 갈 것인지는 스스로의 책임이며 선택이다. 이 땅이 누구의 땅인지를 안다면 더 늦기 전에 우리는 우리가 가야하는 길을 바르게 찾아가야 하리다. 남의 길은 남의 길이고 우리의 길은 아니다. 우리에게 우리의 역사가 있다면 우리의 역사는 어디에 있는가?


바다에서 배로 항해하는 항해로 바른 정상적인 길을 알며 항해하는 항해사는 중간에 항해로 가야하는 길에 대하여 어려운 일이 다친다고 바꿀 수는 없다. 하나의 배가 항해를 하는 항법에 의하여 가야하는 항해법에 대한 항로가 잘못이면 항해사 혼자만 문제가 아닌 배를 타고 있는 승조원들의 생명과 그들의 생명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하여 비참할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일도 있기에 바른 정상적인 항해사로 행해법의 항해술로 바른 지식을 습득하여 스스로의 주체적인 현실로 갖추어 겸비한 인물은 앞을 가로막는 어려움들에 봉착한다고 해도 항로를 쉽게 바꿀 수 없다.


현재에서 가는 항해에 대한 항로가 문제가 발생하여 보인다고 항로를 바꾸어야 가야하는 문제가 있다면 항로를 밝히어 놓아 보이는 안전한 항로가 있어야 바꿀 수 있지 바르게 갈 수 있는 안정하면서 좋은 항로가 없는데 어떻게 바른 항해의 항로를 알면서 어려움에 있다고 가야하는 항해술에 대한 바른 항법에 대한 항해술을 알면서 항해에 대한 항로방법을 바꾸어 갈수 있는가? 항법의 항해술에 대한 지식을 바르게 습득하여 아는 스스로의 주체적인 인물들이거나 배를 대표하는 인물이면 바다에서 항해를 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면 어떠한 현실로 항법에 대한 항해술을 어떠한 현실로 표현하여 조명하여 보이는 언론적인 현실로 등장하여 보일까?


지식으로 배우는 지식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무엇인가를 하나를 배워 안다는 누구의 사고에 대한 생각이 중요하고 필요한 부분이 아니고 그 자신의 주체적인 가치적인 생명으로 스스로의 주체가 되는 생명에 대한 현실로 지식은 필요하고 배움에 대한 지식은 필요하며 좋은 지식은 필요하다. 변화는 어떠한 현실로 발생하는가? 타의 권력에 대한 명령에 대한 현실로 나의 모습이 다르고 변화한다는 사실이면 현재의 나는 무엇이며 어떠한 존재로 무엇을 누구로 위한 존재로 있는 것인가? 인간의 사회에 대한 정치저인 현실로 필요한 현실은 무엇이 필요하고 어떠한 인물들이 필요한가?


지식인이 필요한 현실은 왜 필요하며 지식인은 지식인이라는 이름에 대한 현실로 필요한 존재가 아님은 분명한데 우리사회에서 지식인은 어떠한 인물들이 지식인인 존재적인 정치적인 사회현실의 언론으로 등장하여 조명하는 사회로 우리는 있는가? ‘지식은 소유적인 형상적인 조명의 개념이 아니고 無의 존재적인 가치의 생명에 대한 有’로 존재하는 가치생명으로서 모두를 포함할 수 있는 가치적인 생명의 역사이며 문화로서 필요한 현실의 존재가 지식이며 지식인의 존재다.


농부는 왜 필요한가? 농부는 농부라는 이름으로서 필요한 현실이 아니고 농부가 있다면 농부는 그가 속한 한 가정의 현실을 가지고 보면 그 가정을 유지하여 보전과 보호와 키우기 위하여 부모와 같은 현실로 필요한 농부가 그의 직업일 경우도 있지만 한 사회적인 현실로 보면 한 사회에서 농부가 필요한 현실은 그 사회에서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에게 필요한 좋은 자양분을 제공하여 주는 부모와 같은 현실로서의 필요한 존재적인 가치로서 좋은 작물을 생산하여 내는 인물들로 필요하지 농부가 한 개인영리에 대한 목적으로 존재하는 농부이라면 그 농부라는 이름은 그 사회에서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고 필요로 하는 농부들이라고 할 수 있는가? 사회적인 현실로서의 필요한 존재는 무엇이 주가 되는 현실로 투자와 보호나 보전으로 무엇을 필요로 하는 가치로서 필요하며 누구를 위하여 필요로 하는 투자나 보호와 보전으로서 필요로 하는 사회이어야 바른 정상적인 사회로서 경쟁력이 있으며 좋은 사회로 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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