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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박을 먹으며~ 』 운동 후 공복에 갈증이 밀려올 때 먹는 수박 한 조각은 오아시스다. 더욱이 냉장고에서 갓 꺼낸 잘 여문 붉은 수박이라면 혀에 닿기도 전에 녹아버릴 정도다. 입안에서 이내 녹아 물처럼 변하는 형체 없는 과일이지만 달콤한 수박물이 전해주는 전율은 거뜬히 무더위를 이기고도 남음이 있다. 그만큼 수박은 여름을 대표하는 과일이며 갈증해소의 대명사다.
이런 수박을 지금은 계절에 상관없이, 그리고 여름 내내 먹을 수 있지만 불과 30여년전만 해도 수입 바나나에 뒤지지 않는 귀한 먹거리였다. 수박 사온 날은 온 식구 잔칫날이나 다름없었다. 저녁상을 파하고 마당가 쑥더미 모깃불이 한창 핏대를 올릴 즈음 평상에 둘러앉아 쪼개먹는 수박은 별천지 음식이었다. 우물가나 고무양동이에 담가 두었던 수박은 마치 냉동실에서 나온 듯 찬 기운을 뿜어냈다. 어머니의 부엌칼에 쫘아악 갈라지며 내는 소리는 그 어떤 악기보다 더 아름답고 여문 음색이었다.
중심부 제일 실하게 익은 것은 당연 할아버지나 할머니 차지였다. 그 다음 아버지에게 몇 조각이 배정되고 나면 나머지는 우리들 차지였다. 그러나 수박의 부위는 그다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그저 배불리, 많이 먹을 수 만 있다면 덜 익거나 자투리 따위는 개의치 않았다. 물론 어머니는 늘 뒷전이셨다. 먹고 남은 자투리를 드셨다. 귀한 수박이라 우리들은 껍질이 하얗게 보일 때까지 갉아 먹었다. 빨간 수박이 조금이라도 남을틈이 없었다. 심지어 껍질의 하얀 부분까지도 먹는 열정을 보였다. 그땐 누구나 그렇게 먹는 게 정석이었다. 가난하고 모든 게 부족했던 시절, 열 명에 가까운 대식구들에게 수박 한 덩이는 삶의 투영체였다. 그래도 많이 먹으려고 싸우거나 다투진 않았다. 그러다 오히려 쫓겨나기 일쑤였으니 으레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 우애가 남달랐다.
이런 수박은 예부터 조상들의 여름나기에도 빠지지 않는다. 시원한 계곡에 발을 담군 채 탁족을 즐기며 수박을 나누어 먹음으로써 긴 폭염을 시원하게 나는 지혜를 보였다. 때론 삼계탕을 먹으며 이열치열의 기운으로 몸을 보양하였고, 나무그늘에 앉아 합죽선을 부치며 자연바람을 온 몸으로 안은 채 밤엔 죽부인을 껴안고 자는 등 무더위를 이기기 위한 다양한 방편이 시도되었다. 지금은 냉장고와 에어컨이 그 자리를 대신해 언제든 시원한 여름을 만들어내고 있으니 수박한통에 대식구가 달려들어 먹던 그 여름밤은 아득한 먼 나라 이야기가 된지 오래다.
올여름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것이다. 태풍도 많이 온다고 한다. 습하고 더운 여름에는 무엇보다 시원한 음식이 대세다. 그렇다고 너무 냉한 환경에만 노출되면 건강에 해롭다. 가급적 따뜻하고 영양이 풍부한 음식으로 몸을 보양하되, 외기의 열기가 더해져 심신이 더위에 지칠 즈음 한 덩이 냉 수박은 충분히 보양의 몫을 단단히 할 것이다. 수박은 수분보충과 갈증해소에 탁월하다. 더구나 비타민과 무기질도 많아 피로회복은 물론 이뇨작용에도 아주 좋은 과일이다. 특히 수박씨는 씹어 먹거나 차로 끊여 마시면 콜레스테롤 감축 등 성인병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작열하는 여름들판 한가운데 우뚝 선 원두막 풍경은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다. 밤새 꿀잠도 마다한 채 수박, 참외밭을 누비던 서리도 이젠 추억이 된 지금, 아내가 시원하게 썰어온 수박을 먹으며, 추억은, 모깃불 향기롭던 유년의 고향집 마당을 지나 어둑한 들녘 원두막 아래 수박밭을 몰래 점령했던 코흘리개 동무들을 만나고 있다.
향촌동 회사원 이용호 2015년 07월 16일 10시 50분 Copyright (c) 1999 사천신문 Co.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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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