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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없이 행복했던 그 여름방학! 』 방학을 앞둔 아이들의 표정이 그다지 밝지 않다. 더위나 추위를 피해 학교수업을 중지하고 잠시 휴식을 갖는 게 방학인데, 요즘 같아선 방학의 의미도 퇴색해 버린 듯 하다. 무엇보다 학원으로 이어지는 공부의 연속이 그렇다. 공부가 삶의 중요한 과정이긴 하지만 방학은 어디까지나 방학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다하는 게 좋다. 그게 놀이든 여행이든 늦잠 자는 여유까지도 말이다. 그러고 보면 내 유년의 방학은 본연의 책무를 결코 져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여름 들판의 곡식들 마냥 까맣게 여문 추억을 이리 오래 간직한 채 반추하고 있으니 삶의 과분한 자양분이 아닌가 싶다.
유년의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지금처럼 끈적거리고 희뿌연 여름이 아니라 참 맑고 깔끔한 더위였다. 태양은 세상을 삶을 듯 작열했고, 발바닥을 달구는 흙의 열기는 조무래기들을 마냥 세워 두지 않았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개울과 산과 바다를 오가며 여름 내내 여린 살갗을 헌사 했다. 그러니 보리밥에 김치가 전부였던 밥상이 오래 배를 두둑이 지켜줄 것도 만무했다. 옥수수와 감자와 산딸기가 주전부리로 위로가 되었지만 간혹 수박이나 참외 복숭아 서리가 성과를 거두는 날은 이른바 잔칫날이었다. 덜 익은 참외는 그날 밤 오장육부를 뒤트는 후환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방학은 방학생활(후일 탐구생활로 바뀜)이라는 두둑한 책과 함께 안겨졌다. 주로 자연에 관한 내용들이 많았고 산수나 과학도 골고루 섞여 부족한 공부를 채우기에도 모자람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방학이 거의 다 끝나갈 무렵 일기와 함께 벼락치기 수행물이어서 나름 고통을 안겨 주기도 했다. 곤충채집은 단골과제였다. 잠자리와 나비 등 작은 곤충을 잡아 말린 뒤 핀으로 고정시켜 제출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곤충들에게 괜히 미안해진다.
여름방학은 뭐니 뭐니 해도 멱 감는 재미가 최고였다. 장마나 큰비가 지나고 나면 읍내하천은 거대한 해수욕장으로 변했다.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파이고 곡면마다 깊어진 수심은 조무래기들의 다이빙 장소로 제격이었다. 상류 과수원 위에는 벼락을 맞은 천인단애 철벽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곳을 벼락바위라 불렀다. 그 위에 올라서서 겁도 없이 다이빙을 하면서 물고기도 잡아 구워먹으며 여름 한나절을 죽치고 놀았다. 그사이 읍내 다리 밑에는 영사단이 들어와 밤마다 중국무술영화를 상영하였다. 돈이 없는 우리는 몰래 숨어들어가다 들켜 얼마나 맞았는지 아침이면 퍼런 살갗을 자랑삼아 보여주기도 했다.
이맘때 개천에는 은어가 많이 올라왔다. 긴 철사 줄로 은어를 후려갈겨 쇠줄에 줄줄이 달아 구워먹던 추억이 새롭다. 바다에서 고동이랑 성게도 잡아 먹고 발갛게 여문 찔레꽃 열매도 따서 먹었다. 어떤 때는 면소재지를 벗어나 뱀장어를 잡으러 원정을 가기도 했다. 왕피천 댐엔 칠성뱀장어(몸옆에 일곱쌍의 아가미구멍이 있음)가 많았다. 뱀장어를 잡다가 싫증나면 하천가 고목 구멍에서 뱀도 잡곤 했다. 읍내에 팔아서 자장면과 아이스깨끼(빙과류)도 사먹으며 길고 무더운 여름을 털어냈다.
그렇게 끝난 방학 뒤로 머잖아 태풍들이 연이어 닥쳤고 황톳물로 불어난 읍내하천가에는 상류에서 떠내려 온 돼지와 닭 그리고 호박 수박 등이 둥실거렸다. 온 동네 사람들이 건져내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다시 햇살이 나고 불어난 하천가에는 또 한 번 조무래기들의 막바지 멱 감기가 성황이었다. 낮게 내려앉은 고추잠자리 날개위로 선선한 가을이 어느새 바람을 풀고 있었다. 그런 여름방학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향촌동 회사원 이용호 2015년 08월 06일 11시 26분 Copyright (c) 1999 사천신문 Co.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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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