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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칼럼
지역의 역사를 소중히 간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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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삼과 향토사랑

  ......잿더미에 까치 오르고 아이 오르고 아지랑이 오르고 / 해바라기하기 좋을 볏곡간 마당에 / 볏짐같이 누우런 사람들이 물러서서 / 어느 눈 오신 날 눈을 치고 생긴 듯한 말다툼 소리도 누우러니 / 소는 기르매 지고 조은다. / 아 모두들 따사로이 가난하니.
가난, 그 절박한 가난을 따사롭다고 했다. 이 시의 제목은 ‘삼천포(三千浦)’이다. 6, 70년 삼천포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작품이 시적 공간을 그림처럼 그렸다고 생각할 것이다. 당시 삼천포의 실제 모습이 시의 정조(情調)와 퍽 닮았으니까.
그럼 ‘삼천포’는 누구의 작품일까?
박재삼이 아닐까? 그는 삼천포가 낳은 한국의 대표적인 시정시인이니 당연히 이런 시를 쓰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시는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평안도 정주 출신의 시인인 백석의 작품이다.
박재삼은 삼천포에서 살았다. 그는 삼천포 출신의 유명인처럼 일찍 고향을 떠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자기 시세계의 자양분을 오롯이 고향과 바다에서 얻었다. 시인에게 삼천포는 고향 이상의 의미를 지닌 공간이었다.
우리가 흔히 박재삼의 시세계를 말할 때, 가난, 한(恨), 고통 등을 많이 얘기한다. 그런데 시인이 자랐던 시절의 삼천포를 생각한다면 가난, 한, 고통 등의 단어는 전혀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삼천포, 가난, 고통 등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박재삼 시인만 그렇게 산 것이 아니라 삼천포에 살았던 민초들은 가난을 벗으로 여겼다. 백석은 남도를 지나면서 언뜻 본 가난한 삼천포를 따사로이 아름답고 환상적으로 묘사했다.
박재삼의 시세계는 삼천포와 분리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박재삼의 시 속에서 삼천포라는 고유명사를 쉽게 찾을 수가 없다. 이는 참으로 아이러니다.
필자는 삼천포 하면 금방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다.
바다, 노산, 팔포, 목섬(首島), 방파제, 어판장 등이다. 사실 이런 단어들은 박재삼이 연작시 <추억에서> 나오는 시어들이다. 필자가 그의 작품을 읽었기 때문에 이런 단어들이 생각났을까? 아니다. 필자는 박재삼과 상당한 시간 차이를 있었지만, 같은 장소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곳이 현재 노산공원 아래에 위치한 박재삼 거리이다. 필자 역시 그곳에서 초/중/고를 다녔다.
서정주에게는 질마재, 유치환에게는 통영이 있었듯이 박재삼에게는 삼천포가 있었다.
그런데 막상 그의 시에서 삼천포란 단어를 찾기 어렵다. 시 속의 단어들로 미루어 보자면 주소는 분명한데, 문패는 잘 보이지 않는다. 심저 다른 문패가 매달려 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그의 유명한 시 ‘추억에서’를 보면 ‘진주 장터 생어물전’이란 표현이 등장한다. 그 때문에 박재삼을 진주 사람으로 아는 독자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 생어물전으로 유명한 곳은 진주가 아니라 삼천포이다.
박재삼은 유년 시절 지독하게 가난했고, 자신에게 그 가난을 안겨준 삼천포가 무척 싫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럼, 박재삼에게 삼천포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공간이었을까? 만일 그랬다면 당대 서정시의 최고 걸작인 ‘추억에서’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연작시 ‘추억에서’는 그의 유년의 시절 경험을 형상화한 작품이고, 노산, 팔포, 방파제, 목섬이란 공간에 바치는 헌시이다. 박재삼에게 삼천포는 시적 자양분을 준 공간이었지만 자긍심을 준 공간은 아니었다.
예술가들에게 고향에 대한 자긍심이 없는 것은 그 지역의 입장에서는 크나큰 손실이다. 그 지역은 중요한 문화적 자산을 잃는 것이다. 지역에서 자라 존경받는 예술가가 됐는데, 막상 그 예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그를 다른 지역 사람으로 알고 있다면...... 앞으로도 삼천포, 사천 출신의 문화 예술인들이 계속 탄생할 것이다. 이미 ‘장구의 신’이라는 가수 ‘박서진’이 탄생해서 가요계에 신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다행이 그 친구는 자신이 삼천포 출신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한다. 그도 역시 가난해서 삼천포 초, 중학교 밖에 다니지 못했다.
그럼, 고향 대한 자긍심은 어떻게 생겨날까? 그 지역 사람들이 고향에 대한 애정을 갖고 가꾸어 나가면 된다. 삼천포나 사천은 자긍심을 가질 만큼 충분한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을 가졌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삼천포는 그런 역사와 자연을 찾아내서 갈고 다듬어야 한다. 그리고 지역사람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려야 한다.
이제 사천 사람들이 지역의 역사와 자연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하나의 구심점이 필요하다. 그것이 사천 향토사 연구회가 활성화돼야 하는 이유다.

◇강희진
경남 삼천포 출생.
삼천포 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과 졸업.
1994년 KBS 드라마 극본공모 당선.
<그때 그 사건> 등 다큐드라마 다수 집필.
2011년 1억 고료 세계문학상 대상수상
작품, 장편소설 <유령>(은행나무 발행)
2014년 장편소설 <이신>(김영사, 비채 발행)
2015년 장편소설 <포피>(나무옆의자 발행)
2016년 장편소설 <올빼미 무덤>(은행나무 발행)
2019년 장편소설 <카니발>(나무옆의자)
대담집
2018년 이준석 손아람 강희진 <그 의견에는 동의합니다>(21세기북스 발행)
2019년 이준석 강희진<공정한 경쟁>(나무옆의자 발행)

2020년 02월 13일 11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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