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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칼럼
박재삼, 최송량, 그리고 우보(牛步) 박남조
경남 사천 혹은 삼천포 지역의 정신문화의 상징처럼 된 시인은 박재삼이다. 그의 시세계는 한국의 시조 전통이나 가난과 고통으로 점철된 우리민족 정서인 恨의 감수성에 닿아 있다 ...... 봉화칼럼 전체 리스트 보기
 
 
사천해전과 거북선(1)

1592년 5월29일 새벽 여수를 출발한 전라좌수영 수군들은 23척의 판옥선에 승선하여 일자진을 펼친채 사천으로 향했다.
부지런히 노를 저어 남해 노량에서 경상우수사 원균의 함대와 만났고 경상 우수사 원균은 세척의 판옥선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수사 왜군들이 경상도 사천바다까지 진출하여 지금 사천만 선진리쪽에 교두보를 만들고 있소이다. 13척 정도 되는것 같은데 경상우수군 혼자만으로는 쳐부수기 힘들 것 같아 도움을 요청했소이다 같이 가서 왜놈들을 몰아냅시다"
“알겠소이다 전라좌수군은 경상도 바다의 물길을 잘 모르니 안내하시오" 전라좌수군과 경상우수군 연합함대는 이순신의 지휘하에 사천만으로 나아갔다. 도중에 왜군의 전선 세끼부네 한척이 조선 수군을 발견하곤 사천만쪽으로 도주했다.
적의 척후선이었다 놓치면 기습공격은 어렵게 되는 순간이었다.
“추격하라" 남해현령 기효근과 방답첨사 이순신이 협선들을 지휘하여 추격했다 왜군의 세끼부네는 듣던대로 속력이 빨랐다.
조선수군의 격군들은 팔뚝의 힘줄이 솟아나도록 노를 저어 화살의 사정거리안으로 접근했다 화포를 쏘면 적에게 들킬 우려때문에 불화살로 공격하여 적선을 불태우거나 당파로 침몰시키는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왜선도 잡히지 안으려 필사적으로 도주했다.
사정거리안에 들어올즈음 다급한 적들은 소라고둥소리를 뚜우하고 몇번 울린후 사천쪽 육지에 배를 대고는 모두 산으로 도망해버렸다. 왜군의 배를 사조구를 걸어서 당겨내어 불화살 공격으로 불태운후 본진에 합류한 방답첨사와남해현령의 보고를 들은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기습은 어려울것같다 적들도 우리가 온다는 신호를 받았을것이니 정면 공격이다 척후선과 협선들은 뒤로 물리고 이제부터 첨자진을 형성한다"
첨자기가 올라가니 조선수군 연합함대는 뽀족한 삼각형모양의 진형을 갖추고 총통을 발사하며 위풍당당하게 사천선진리 포구로 진격해 들어갔다. 경상우수사 원균의 말대로 포구 깊숙한 곳에 대선13척이 정박해 있었고 적들은 이미 산 언덕에 포진하여 대항할 준비를 갖추고 함성을 지르며 조선수군에게 조총을 쏘아대고 있었다. 오전 11시 적 척후선을 잡느라고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물때는 썰물로 바뀌고 있었다
“진을 물려라" 판옥선은 선체가 무겁고 크기 때문에 갯벌에 걸리면 해안을 따라나오는 적들에게 꼼짝없이 당할 수 있다. 들물 때까지 기다렸다 적들을 넓은 바다로 유인한후 이번 출동때 첫 출전한 거북선을 앞세워 공격할것이다"
기함에서 참퇴의 깃발이 오르니 조선수군 연합함대는 잠시 물러나 물이 들때를 기다렸다.
“격군들을 교대시키고 점심을 먹여라 이번 싸움은 길어질것같다 방답첨사 이순신은 판옥선 3척을 거느리고 혹시 모를 왜군의 후미기습에 대비하여 삼칭이진 (삼천포)근처에 복병하고 있다가 적선이 나타나면 신기전으로 신호하기 바란다 양면으로 협공당하면 완전한 승리를 거둘수 없으니 지금 당장 출발하라"
오후4시경 물때는 밀물로 바뀌었다.
“거북선을 불러라" 기함에서 귀자 깃발이 올라가자 검은색으로 칠한 거대한 2척의 거북형상을 한 전투함이 앞으로 나왔다.이때 왜군들도 일부는 그들의 배로 승선하고 일부는 여전히 산위에서 조총을 쏘며 조선수군을 위협했다.
“발포하라" 진격의 북소리와 함께 앞으로 나아간 거북선에 장착된 천자, 지자, 황자, 현자총통에서 우레같은 소리의 화포들이 불을 뿜었다. 왜군들은 자기들의 유일한 분신같은 배들이 깨어져 나가자 죽기를 각오하고 배를 몰아 포구를 벗어나오기 시작했다.
근접전! 조선수군이 꺼렸던 전투가 시작되었다.
난 바다로 나온 일본함대는 그들의 장기안 기미꼬리(등선육박전)를 준비하기 위해 칼잡이들을 갑판에 대기시키고 조총을 쏘아대며 조선수군의 판옥선 진형을 흩으려 하였다.
옥포해전 이후 사기가 오른 조선수군도 왜군의 전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파로 적선을 깨뜨려나갔다.
이날의 해전에서 일등공신은 두척의 거북선이었다.
적선 가까이 근접하여 적선의 노를 부러뜨리고 화포를 직사로 발사하여 적선을 침몰시켰다. 왜군들은 그들의 장기를 펼치기 위하여 거북선으로 건너 뛰었으나 기다리는것은 온몸을 찔러대는 가마니에 덮힌 쇠못과 날카로운 칼날이었다.
거북선의 등판에서는 기미꼬리를 펼칠수가 없었던 것이다.
거북선의 맹활약으로 사기가오른 조선수군의 공격으로 바다로 나왔던 왜선들은 모조리 수장되었다.
거북선의 비밀병기로서의 한수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거북선 조선수군의 힘 !
세계 해전사에 이름을 올리게 돤 거북선의 첫 출전인 사천해전의 승리의 결과는 이순신 제독의 탁월한 탐구정신과 맞물린 리더쉽의 결과였다
근접전인 이 해전에서 전라좌수사 이순신과 거북선 건조감독인 나대용과 몇명의 사부와 격군들이 조총에 맞아 부상 당했다.
깨어진 적선과 목잘린 왜군들의 시체들을 뒤로 한채 조선수군 연합함대는 어둠이 내리는 바다길을 따라 모자랑포(사천시 남양동)에서 닻을 내리고 정박했다.
사천해전의 승리는 거북선을 이용한 근접전형태의 해전이었다.
임진란때 거북선은 5척정도 제작되었는데 4차출정인 부산포해전때까지는 3척이 건조되어 활동했다는 기록이있다.
방답귀선, 순천귀선, 본영귀선 이렇게 세척이다.
사천해전에는 방답귀선, 순천귀선이 참여했다고 한다.
이후 통제영귀선 두척이 건조되어 5척이 전투에 참전했는데 원균의 칠천량해전 이후에는 거북선이 전투에 첨전했다는 기록은 난중일기에는 보이지 않는다 건조할 여력이 없었던 같다.
현재 거북선은 세계7대 전투함에 들어간다.
사천해전의 승리의 주역인 거북선을 사천에서는 홀대하고 있지나 않은지 살펴보아야할것이다. 사천해전 전승 상설전시 공연장도 만들어 역사교육의 체험장도 개설하여 다른곳 관광자원 부러워 말고 이순신제독의 탐구와 개척정신을 본받아 우리 지역의 문화적 역량이 살아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역사성과 현실성을 함께 구현하여 낙후된 관광자원도 멋지게 아름답게 예술적으로 만들어내고 수익성도 함께 올리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참고서적
난중일기...이순신 저 박종평옮김 2019 글항아리
임진왜란 해전사 ....이민웅 지음 2004 청어람미디어
불패의 리더 이순신....윤영수 2005 웅진지식하우스
이순신리더십....이창호지음2014 해피북스

※재경삼천포고등학교동문회 김학명

2020년 08월 06일 11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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