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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왜성 답사기

2020년 8월28일 오후1시 순천왜성을 찾아가다.
바닷가옆 주차장에서 조금 걸어올라가니 역사기록에서만 보아왔던 임진왜란의 선봉장이요 이순신제독이 마지막까지 깨부수려고 몇번이나 기회를 노리다 끝내 섬멸하지 못한 고니시 유키나카부대의 주둔지였던 순천왜성앞에 서니 역사의 시간을 건너뛰어 조선시대 임진.정유왜란의 현장으로 들어서는것 같아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순천왜성 그 규모의 크기에 놀랐다. 성 전체가 둘레가 너무커서 한장의 사진에 넣기가 어려웠다.
사천 선진리 왜성을 보고난 후여서 크기가 선진리성처럼 아담할거라고 생각한것은 오산이었다.
일본 오사카에서 바라본 오사카 성도 큰 규모였지만 그것은 몇년에 걸쳐지어진 히데요시 자신의 위용을 널리 알리기 위한 필생의 작업결과이고 히데요시의 평생의 전투경험이 녹아있어 난공불락의 요새로 지어진 것인데 정유재란때 만들어진 순천 왜성은 고니시 부대가 3개월에 걸쳐 축조했고 조선인 포로들을 시켜서 작업했으니 조선을 침략한 왜군들의 치밀하고 주도면밀함에 놀랐으며 이 왜성을 쌓기위해 포로로 잡혀 죽어라 고생하고 마지막에는 살해당한(왜군들은 퇴각전 포로들의 목을베어 명수군도독진린과 육군도독 유정에게 뇌물로 주었다고 난중일기에 기록됨) 우리 조상들의 피눈물이 베어든듯 성돌 여러군데엔 검붉은 돌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성의 위치를 전략적으로 살펴보면 남쪽으로는 절벽이고 서쪽에는 작은섬이 하나 있어 왜군 세키부네 전투선들을 이 섬뒤에 복병시켜 놓고 정면으로 공격해 들어오는 조선 수군의 측면을 공격하면 아무리 훈련이 잘된 조선수군도 당황하여 전열이 흩어질것이 분명했다.
왜성 앞으로는 목책이 넓게 전개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모두 매립되어 그 흔적을 찾을수 없었다.
성은 삼단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북쪽으로 육군이 공격해오면 그걸 막기위한 작은 옹성이 두군데 축성되어 있었고 옹성 앞쪽은 깊은 해자를 파서 성쪽으로의 접근을 막았다고하는데 지금은 연꽃이 가득한 연못으로 변하여 있었다. 고니시 유키나카는 카토기요마사(가등청, 임진왜란 2군 선봉장)와 함께 히데요시의 2대 심복이었으므로 히데요시의 명령을 충실이 이행하여 성 축조에 온 정성을 쏟아 성은 공격하기에는 아주어렵게 되어있고 철벽방어가 가능한 그런형태로 조성되어 있었다.
고니시(소서행장)1만8천명 부대는 작은섬에 있는 전투선으로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 섬 중간에 다리를 놓아서 왕래했다고 한다. 지금 섬은 매립되어 일부는 갈대밭으로 나머지는 도로로 변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도 순천 왜성이 나오는데 순천만은 만이넓고 깊어서 수군단독으로공격하기에는 힘들다고 했으며 육군이 후방을 공격해주면 그 틈을 타서 전방의 목책을 도끼로 제거하고 판옥선으로 돌격하여 왜선들을 포격 불태우고 적을 섬멸할수있다는 장계를 올렸었다.
실제로 명나라도독 유정에게 서한을 보내놓고 수륙병진 공격을 하기위해 순천만에서 대기하고 있으면서 연락군관을 수차례 파견하여 같이 공격할것을 요청했지만 명도독 유정은 꼼짝도 하지않은채 기다리라는 답신만 계속보내왔었다.
순천만 앞에서 며칠간 대기하던 이순신장군은 눈물을 머금고 조선수군을 회항시킬수밖에 없었다.
이 강토를 유린한 원수같은 왜적이 눈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수군 단독공격은 너무많은 희생을 치른다는걸 알고있었기에 실행할수가 없었던 것이다.
순천왜성 천수각 자리에서 바라보니 저멀리 조선 수군의 함대의 깃발이 보이는듯하고 이순신제독이 탄 기함에서는 진격의 북소리가 울려퍼지는듯하여 가슴엔 벅찬 감격이 일어났다.
만약에 이순신제독의 계획대로 순천의 적을 격멸했다면 정유재란 전쟁의 양상은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순천의 왜적을 격파한 다음은 사천의 시마즈 요시히로 부대를 고립시켜 섬멸했을 것이고 다음은 남해에 주둔했던 쇼요시토시 부대를 격파하고 거제도의 적들도 잡아죽였으면 일본군은 전열이 붕괴되어 오합지졸로 도주했을것이고 그들의 후퇴로를 따라 이순신제독은 대마도를 쓸어버리고 두번다시 이 땅에 왜적이 발을 못딛게 대마도에 조선수군의 전진기지를 만든후 일본 수군들을 차례로 괴멸시켰을 것인데 역사에는 만약이라는것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상상에 젖어보는 아쉬움을 뒤로한채 성을 내려올수밖에 없었다.
성 주변의 잡풀을 제거하시는 분들의 구슬땀흘리는 모습에서 침략의 역사도 우리는 잘 보존하여 후손들에게는 두번다시 아픈 역사의 모습을 보여주어서는 안된다는 생각했다.

재경 삼천포고등학교동문회 사무국장 김학명

2020년 09월 10일 11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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