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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칼럼
화상 입었을 때 응급처치와 치료방법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발생할 수 있는 부상 중 하나가 바로 화상이다. 화상은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발생하며, 흔히 요리할 때나 다림질 할 때 등 아차 하는 순간 화상을 입을 수 있다 ...... 봉화칼럼 전체 리스트 보기
 
 
대한민국 10대 명품섬 신수도

신수도는 1453년 단종(2년)에는 심수도로 불리웠다.
1453년 경상도관찰사 황수신이 경상도 남서해안을 둘러보고 장계를 올리니 경상도 서남해안 근해에는 바닷물이 맑고 깨끗하며 조류의 흐름이 거세어 물고기가 많은데다 토지는 비옥하며 사천 남면 삼천리 근처는 갯벌이 좋아 염전에서 소금을 많이 얻으며 고성, 사천, 진주, 3개읍과 인근 해변과 섬들에 흩어져 사는 백성들의 가옥수가 623호에 이르옵니다.
이 평화로운 지방에 왜선이 침범하여 섬 뒤에 숨어있다 기습하면 무인지경으로 주변 육지의 백성들은 또 당할수밖에 없나이다.
이에 삼천리앞 심수도(신수도)에 병선 5척을 두고 배마다 20명을 태워 방비케하고 총 병력 2백명으로 경비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무술이 능한자를 뽑아 권관으로 삼고 이섬에 상주하게 하면서 군사들을 통솔하게 하였습니다.
신수도는 삼천진성을 쌓기전까지 사량진과 적량진을 이어주는 중간쯤에 위치한 중요한 수군 주둔지였다.단종2년1453년부터 성종19년 1488년까지 35년의 기간동안 신수도에는 조선의 정예수군이 주둔하였던 역사의 깊은 의미를 가진 섬이다.
그동안 섬주민들이 무심코 부르던 “진끝"은 병선의 출항지에서 보면 수군주둔지 끝머리에 해당되며, “맨추"는 병선을 붙들어 매어둔다는 의미로 해석할수 있으며, 섬사람들이 안기등, 안개등이라 부르던 산은 소왕가산 인데 신수도 어르신들 사투리로 왕기, 앙기, 아이고마 앙기뭐라 해샀던데 고마 “앙기등”이다마 “진주재" 는 신수도에서 진주가 보이는것이 아니라 조선의 팔도에서 온 수군들은 거반 진주를 거쳐 내려 왔기 때문에 진주를 지나 언제 고향으로 돌아가나 하는 마음에서 진주재 언덕으로 올라 신수도 주둔 수군들 향수를 달랬던 곳입니다.
신수도 주변의 무인도들이(목섬 포함)거의 신수도 소유로 되었던 이유는 신수도 주둔 수군들의 기세가 그만큼 강했다는 반증이며 70년대까지도 목섬은 신수도 어촌계가 관리하고 있었는데 몇해 동안 팔포 주민들이 가지고 오던 막걸리 몇말에 “그냥 가가삐소"하고 주어버린 참 순진한 신수도분들 이었습니다.
35년간 신수도에 수군이 주둔 하면서 남겨진 유산들은 많다.
신수도 주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무인도와 그 주변 해역들, 두군데의 죽방렴 어장과 굵은 소나무들이 울창했던 해안가의 아름다운 절경 일찍부터 병선 건조용 소나무들을 아끼고 보호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유서깊은 신수도 조상님들이 물려준 유산들 지키지 못하여 죄송한 마음 금할길 없었는데 최근에 들려온 소식에 너무나 황당하여 비통함 금할길 없어 이글을 작성해봅니다.
대군이 주둔했다 하여 대구머리로 불리는 몽돌밭 언덕에 사천시가 투자하여 캠핑장을 지어 주었는데 이 캠핑장 운영권을 신수도 발전위원회인가 뭔가하는 단체에서 (회원8명) 법인을 만들어 자기들이 요금을 영구히 받겠다고 사천시에 신청했었다고 합니다.
신수도 대구머리가 이 단체 땅은 아니지 않습니까. 주민들 모두에게 어떤 방향으로던지 혜택이 돌아가게 해야지 어느 단체가 그 수익금을 가져가는 것은 정말 옳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순진한 신수도 주민들 뭘 모른다고 더는 속이면 안될것이며 관계된 기관에서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참고자료 : 2020년 12월17일 사천신문 김진식 부장의 글에서

서울지사장 김 학 명

2021년 03월 25일 10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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