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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칼럼
역(易)에 통달한 사람은 점을 치지 않는다(善易者不卜)
1986년 1월 28일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됐다. 7명의 승무원이 탑승해 있었고, 그중에는 최초의 민간 우주비행사 크리스타 맥컬리프도 승선해 ...... 봉화칼럼 전체 리스트 보기
 
 
천년을 이어 탄생된 『환단고기』

『환단고기』는 안함로의 『삼성기』(『삼성기』上), 원동중의 『삼성기』(『삼성기』下), 행촌 이암의 『단군세기』, 범장의 『북부여기』, 일십당 이맥의 『태백일사』를 모아 한 권으로 묶어낸 사서이다. 신라의 고승高僧 안함로에서 조선조 이맥에 이르기까지 천 년 세월에 걸쳐서 다섯 사람이 저술한 사서가 하나의 책으로 집대성된 것이다.
- 1부 -
1) 한국사의 국통 맥을 세우는 근간, 『삼성기』
『삼성기』 상편과 『삼성기』 하편, 두 권의 『삼성기』는 인류의 창세 역사와 잃어버린 한민족사의 국통 맥을 바로 세우는 근간이 된다.
특히 『삼성기』 상은 신라를 크게 부흥시킨 진흥왕의 손자인 26세 진평왕(재위 579~632) 시대에 쓴 책으로, 현존 사서 중에 우리의 국통 맥을 밝힌 가장 오래된 사서이다. 이 기록은 인류의 시원 국가인 환국에서 배달, 고조선, 북부여를 거쳐 고구려와 신라에 이르는 한민족사의 맥을 압축하여 전하고 있다.
환국과 배달에 대해 『삼성기』 상보다 좀 더 세밀히 전하는 『삼성기』 하는 환국의 열두 나라 이름과 배달의 18세 환웅천황의 이름, 재위 연도까지 상세히 전한다. 하지만 동북아에 세운 한민족의 첫 왕조가 신시神市에 도읍을 정한 ‘배달’임을 밝힌 『삼성기』 상과 달리 『삼성기』 하는 환웅천황이 무리 3천 명을 이끌고 도착한 곳이 ‘신시神市’라는 사실만 기록하였다.
그러나 『삼성기』 하는 환국 시대가 시작되기 이전의 인류 역사, 즉 현 인류의 시조인 나반那般과 아만阿曼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환국의 실존에 대해 『삼성기』 상이 “오환건국吾桓建國이 최고最古라(우리 환족이 세운 나라가 가장 오래되었다)”라고 선언한 것을, 『삼성기』 하는 “석유환국昔有桓國(옛적에 환국이 있었다)”이란 말로써 다시 확인시켜 준다. 특히 석유환국, 네 글자는 『삼국유사』 「고조선기」에서도 선언되는 한국사의 기원에 관한 명구이다. 또한 『삼성기』 상에서 “치우천황이 계시어 청구를 널리 개척하셨다”라고 약술한 것을, 『삼성기』 하는 천자의 자리를 노리고 군사를 일으킨 서방족 헌원을 배달의 치우 천황이 탁록 벌판의 대전쟁에서 무릎을 꿇려 신하로 삼았음을 기록하여 배달 겨레가 청구를 개척한 과정을 자세히 밝혔다.
결론적으로 두 권의 『삼성기』는 서로 음양 짝을 이루어 인류와 한민족의 시원사를 드러내 주는 소중한 사서인 것이다.
2) 고조선사의 모든 것을 밝혀 주는 『단군세기』
『단군세기』는 초대 단군인 단군왕검에서 마지막 47세 고열가 단군에 이르기까지 역대 단군의 이름, 재위 년수, 업적과 사건 등을 중심으로 연대기 형식으로 기술한 사서로 2,096년 동안의 고조선 역사를 전하였다. 『단군세기』가 전하는 고조선 정치의 가장 큰 특징은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이다. 나라를 삼한(진한·번한·마한)으로 나누어 다스린 삼한관경제의 관점에서 고조선사를 살필 때 고조선의 국내정치는 물론 중국, 일본과의 관계까지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단군세기』는 상고 시대 내내 한민족과 인류의 정신적 지주였던 신교 神敎의 다양한 풍속을 전하여 현 인류 문화의 뿌리를 깨우쳐 준다. 신교의 풍속 중에서 천제天祭는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이다. 천제는 환국과 배달 이래 각 시대와 나라마다 다양한 이름으로 행해진 동북아 최대의 제전祭典이었다. 『단군세기』는 고조선 시대 역대 단군이 매년 하늘에 계신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려 상제님의 덕을 찬양하고, 천제를 거행한 후에는 온 백성과 더불어 음주가무를 즐기며 큰 잔치를 벌였음을 전해 준다.
『단군세기』는 고조선의 경제에 대한 중요한 기록도 담고 있다. 흔히 중국의 주나라 때 처음 실시된 것으로 알고 있는 토지 제도인 정전제井田制는 본래 2세 부루단군 때 고조선에서 먼저 실시하였고, 이후 중국으로 전파된 것이다.
또한 우리는 『단군세기』를 통해 우리 민족이 BCE 2,100년경에 벌써 패전貝錢이라는 화폐를 만들어 사용하였고, 세금 제도를 시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단군세기』의 가치는 그 서문에서도 빛을 발한다. 서문에서 “정치는 그릇과 같고 사람은 도道와 같으니, 그릇이 도를 떠나서 존재할 수 있겠는가. 나라는 형체와 같고 역사는 혼과 같으니, 형체가 그 혼을 잃고서 보존될 수 있겠는가”라며 정치와 사람, 나라와 역사의 상호 관계를 강조한다. 당시 고려는 원나라의 부마국으로 전락하여 ‘국호를 버리고 원나라와 합치자’고 주장하는 간신배가 들끓던 때였다. 『단군세기』는 고려 사람 스스로 제 나라를 없애버리려 하는 이러한 세태의 원인을 “나라에 역사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면서, 나라를 구하는 길이 바로 역사를 배우는 데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다음 칼럼에서 2부 『북부여기』와 『태백일사』에 대해 언급할 예정 -

※본 컬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무관함

2021년 09월 30일 10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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