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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칼럼
초심 잃은 사천시의회 ‘감시자’에서 ‘청탁자’로 전락했는가!
근래 일부 사천시의회의원들을 향한 시민들의 실망과 분노가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주민의 대표로서 집행부를 매섭게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시의원 일부가 오히려 본분을 망각한 채 ...... 봉화칼럼 전체 리스트 보기
 
 
『 옛 추억을 회상하며... 〈지천명에 쓰다〉 』

제1편 제9장
고등학교 1학년이던 그해 겨울방학 기간에는 많이 떨어진 학업성적을 올려 보려고 책을 붙들고 있어도 집중이 되질 않아 바닷가를 자주 찾곤 했던 기억이 난다.
사춘기가 늦게 왔었는지 도무지 학업에는 전념이 되질 않고 추리소설 같은 책들은 밤을 새워가며 읽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학업에 전념하지 못하고 지내다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그해 동네 근처에 살고 있던 ‘○수'라는 동창생과 같은 반이 되었는데, 자습이 없는 날은 그 친구와 하굣길에 같이 자주 걸어 다녔던 기억이 난다.
학교 ‘태권도부'였던 ‘○호'라는 동창생이 태권도를 아주 잘했던 거로 기억되는데, ‘○수'라는 그 친구도 태권도를 잘하고 특히, 머리가 유달리 크며 박치기가 매우 센 친구였다.
그 시절에 나는 유도를 배우는 친구들을 따라서 유도 도장에 구경하러 갔다가 그렇게 해서 유도를 조금 배우기 시작했었는데, 그 무렵에 한번은 친구 집에서 장난삼아 그 친구를 붙잡다가 살짝 스치듯한 박치기 맛을 본 적이 있었다. 많이 세다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친구들 사이에서 너그럽게 대하고 웃음도 참 해맑았던 친구로 기억된다.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입학 전에 가족과 함께 시골에서 삼천포(현 삼천포항)시로 이사를 하게 되었던 그 친구는, 나와 출생한 마을이 같은 곳이다 보니, 시골 친구들과도 잘 알고 지냈으며 가끔 함께 어울리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에 또 기억이 많이 나는 동창생 중에서 쌍둥이로 ‘○환'과 ‘○현'이라는 동창생도 있었는데, 운동을 좋아하고 잘했으며 성격도 괜찮았던 거로 기억된다.
또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알게 된 축구를 잘하는 ‘○웅'이라는 동창생이 있었는데, 초등학교에 이어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계속 같은 학교에 다니다 보니 축구를 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다.
지금도 가끔 그 친구를 생각하면, 공을 잘 차지 못하는 친구들을 대할 때 무시하지 않고 대하는 모습이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그 무렵, 나는 “내가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내가 갈피를 못 잡고 왜 이럴까?"라고 여러 가지로 그렇게 마음속으로 나 자신에게 반문하다가 잠을 청한 적이 참 많았던 것 같다.
그때는 대학입학 학력고사(현 대학수학능력시험) 일자가 가까워질수록 마음도 답답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여러 달을 보내다가 이왕 치러야 할 시험 포기하지 않고 하는 데까지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늦게나마 학업에 전념하였던 것 같다.
아무튼 그래서 그랬는지 다행히도 대학 문턱을 밟을 수 있는 성적이 나왔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담임선생님께서 소개해주시는 대학에 원서를 냈는데 은사님의 소개 덕분으로 운이 좋았는지 장학금을 받고 입학을 하게 되었다.
대학 입학을 앞둔 설 명절이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시골에서 성묘하고 난 뒤 옆 마을에서 하는 콩쿠르(노래 부문)에 나가서 ‘젊은 미소'라는 곡을 불러 상을 받기도 하고 시골 친구들과 같이 밤을 새워가며 놀았던 적이 있었다.
그 시절에 일요일이면 가끔 어머니하고 같이 KBS(현 KBS1)에서 방영하는 ‘전국노래자랑'을 보기도 하였는데 내가 마을 콩쿠르에서 상을 한 번 받은 이후 어머니께서 어느 날은 '전국노래자랑'대회에도 내가 나가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한번 봤으면 좋겠다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어머니께서 바라시고 해서 '전국노래자랑'에도 한번 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엄두가 나질 않았던 것 같다.
그 무렵 어느 날 밤에 집에서 아버지와 같이 KBS(현 KBS1)에서 방영하는 ‘가요무대'를 보았던 적이 생각난다.
흘러간 노래가 나왔는데 시청을 하고 계시는 아버지 옆으로 가만히 다가가 앉아서 ‘가요무대'를 보았던 것 같다. 그때 편안하고 참 좋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내가 입대 후 한 달 정도 될 무렵 아버지께서 고기잡이배를 타고 바다로 멀리 나가셨다가 87년 그해 여름의 큰 태풍에 그만 4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는데 세월이 참 많이 흘러갔지만, 지금도 가끔 ‘가요무대'를 볼 때면 아버지 생각이 나서 나도 모르게 가슴이 아려 소리 없는 눈물을 머금는다.

-송연식-

2024년 07월 11일 10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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