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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딪히는 술잔속에 떨어지는 별을 보며~용궁포차 단상 』 1982년도에 발표되어 90년대 인기를 구가하던 노래 중 현숙씨의 포장마차라는 유행가가 있다.
벽돌담 모퉁이에 기대선 포장마차/너도 친구 나도 친구/우연히 만나서 다정한 친구 되는
포장마차 포장마차/(중략)/부딪히는 술잔 속에 떨어지는 별을 보며 하늘을 마신다
인생의 파란 꿈 펼치는 포장마차/로 흘러가는 이 노래는 스펀지 같은 허스키한 목소리도
매력적이지만 당시 포장마차의 인기와 맞물리면서 어디서나 쉽게 들을수 있었던 명곡이었다.
그 기류에 편승해 저녁마다 각 지역의 포장마차는 불야성이었고 지금으로 치자면 SNS 핫플레이스로 각광을 받았다.
서민술집의 대명사였던 포장마차는 우리 지역에서도 많은 인기를 누렸다.
80~90년대 삼천포 해안가와 팔포 한내천 주변에는 포장마차가 성업이었다. 통틀어 30~40군데는 영업중이었는데 밤마다 야금야금 주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의 성지로도 손색이 없었다. 주로 2~3차로 이용되었던 포장마차는 무엇보다 안주의 질과 다양성이 압권이었다. 고기와 회로 대변되는 저녁 메뉴와 달리 싱싱하고 다양한 해산물을 날것으로 썰고 굽거나 졸여 내놓았는데 생물에서 나는 향긋하면서도 쫄깃한 맛이 차가운 술과 어우러져 밤을 새는 일도 많았다.
그 시절 포장마차는 밤 10시는 넘어야 자리가 채워졌고 그 열기는 새벽 2~3시가 되어서야 절정을 맞곤 했다. 더러는 취하고 더러는 노래를 부르며 선창에 서서 노산너머 훤해오는 하늘을 맞기도 했고 바다에 오줌을 갈기다가 헛디뎌 변을 당했다는 소식도 들리던 때였다.
그 무렵 수산시장에는 새벽 어선들이 뱉어놓은 활어가 파시를 형성하며 객지로 하나둘 출가하고 있었다.
쓰린 속은 씨래기국으로 달래고 다시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로 삼천포 항구는 그야말로 불야성을 이루며 전쟁터 같이 진하게 우려지고 있었다. 우정도 인정도 때론 파란꿈도 키우며 우연이든 필연이든 밤새 친구가 되어버린 포장차마는 나름 추억의 장소로 사랑을 받으며 항구의 밤을 지켜주었다.
그 포장차마가 한동안 리모델링을 거쳐 다시 문을 열었다. 그동안 안전과 위생문제는 물론 현금고집이라는 불평속에 그나마 용궁포차촌이라는 상호로 삼천포 유일무이의 추억공간을 선사해온 공로가 인정되어 존속의 가치를 이어온 것인데 지역의 관광과 상권 활성화를 위해 고무적인 조치였다고 본다. 듣자하니 여수나 타 지역의 해안가 포장마차처럼 낭만과 추억의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며 테마를 선정했다고 하나 그런면에선 아쉬운점이 있어 보인다.
좁은 공간에 천편일률적인 구획설정과 배분은 답답하고 밋밋하다. 점포마다 좀 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하는 소비자 입장의 아쉬움이 생기는 이유다. 또한 시내 번화가도 아닌 용궁시장과 노산공원은 물론 선창에 설치된 배경이 무색해지고 천혜의 자연환경을 활용하지 못한 점도 내내 걸린다.
포장마차의 매력은 야외에서 밤 경치를 보는맛도 빼놓을수 없는데 이것 또한 원천 봉쇄되어 노랫말처럼 술잔속에 떨어지는 별을 보며 하늘을 마시는 정취는 애초에 부여받지 못한 셈이 되었다.
고물가에 안주타령은 조심스럽다. 다만 한결 깨끗해지고 친절하며 카드도 가능하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부족한 점은 대교아래 별빛포차와 함께 상호 견제와 공존으로 새로운 활력소가 되길 기대해본다.
어찌되었건 우리지역에 포장마차 명소하나 살아 있다는것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항구와 어시장과 아름다운 해안을 자랑하는 사천에 추억의 포차거리 하나 없다면 얼마나 허허하겠는가? 외지인들뿐 아니라 우리 시민들도 애용하여 명실상부한 명물이 되도록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인들이 앞장서서 안주 개발과 가격 합리화는 물론 친절봉사로 운영해 주어야할 것이다. 아울러 시에서도 용궁포차 주변에 포토라인도 설치하고 주기적인 관리를 통해 불편과 애로사항을 개선해주는 적극 행정이 뒤따라야 할것이다.
부딪히는 술잔속에 떨어지는 별을 보며 추억 한컷 담아갈 수 있는 명소가 되길 기대한다.
향촌동 이용호 2024년 10월 17일 10시 12분 Copyright (c) 1999 사천신문 Co.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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