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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칼럼
꺼져버린 동 지역 경제 불씨, 공약 사업 향촌동 산단 조성으로 되살려야!
사천시의 지형은 통합 이후 오랜 세월동안 미묘한 지역적 균형과 갈등 속에 숨결을 이어왔다. 특히 동 지역(구 삼천포)주민들에게 시정(市政)의 향방은 단순한 행정 서비스의 만족도를 ...... 봉화칼럼 전체 리스트 보기
 
 
『 단장가(斷腸歌) 』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내마음 둘데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이 시는 어린 단종의 유배길을 호송하고 돌아오는 길에 자신이 섬기던 주군을 향한 애끓는 심정을 노래한 금부도사 왕방연의 단장가(斷腸歌)이며 연군가(戀君歌) 이다. 그는 중신이 아니다. 종5품 관리에 불과한 의금부 도사이다. 문헌에 그 이름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낮은 직급의 관리였지만 주군에 대한 충성심은 단종을 섬겼던 사육신 삼중신 생육신 못지 않다는 것을 이 시조를 통해 알 수 있다. 단종을 향한 그의 충정은 먹골배의 유래에서도 찾아 볼 수가 있다. 단종을 호송해서 유배지인 영월로 가던 길에 목이 말라하는 주군에게 물을 올려 드리고 싶었지만 유배길에서는 죄인에게 물을 주는것을 금하는 국법 때문에 주군에게 물을 드릴 수 없어 대신 그 지역에서 나는 배를 올려 드렸다는 것이다. 야사에 의하면 단종이 죽자 왕방연은 벼슬을 버리고 단종에게 배를 받쳤던 중량천변 먹골(묵동)에서 배농사를 짓고 첫 수확을 하면 이 배를 단종이 잠들어 있는 영월을 항해 바치고 절을 올렸다 한다. 이것이 먹골배의 애절한 유래이다.
어떤 역사가는 아마도 그가 유배 호송뿐만 아니라 단종에게 내릴 사약을 가지고 갔을 것이라고 추정을 하기도 한다. 자기가 모시고 섬겼던 주군을 먼 유배길을 호송해야만 하였고 종내에는 몸소 사약까지 올려야 했던 금부도사 왕방연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아마도 예리한 칼로 애를 가르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충절을 이 시대에 대입 시키며 찬찬히 살펴보면 마음이 몹시 무거워진다. 忠은 고사하고 의리 마저도 찾아보기 힘든 야박한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가치관이 바뀔수 있다 손 치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도리가 있을 터인데 이 기본 마저 무너지고 사라지는 모습이 매우 가슴 아프고 슬플 뿐이다.

동재 김정규 논설위원

2026년 06월 04일 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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