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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의 꿈과 함께 새롭게 문을 여는 삼천포대방초등학교 』 노산공원의 종소리에서 3·1 만세 함성까지, 일제강점기 삼천포의 두 학교②
일제강점기 삼천포에는 두 개의 공립 초등학교가 있었다. 하나는 노산공원 호연재 자리의 삼천포공립심상소학교, 다른 하나는 현 삼천포초등학교 터의 삼천포보통공립학교였다. 1917년과 1935년 제작된 삼천포지도 두 곳에는 학교를 나타내는 '文' 기호가 선명히 남아 있어 그 존재를 증언한다.
노산공원 자리의 삼천포공립심상소학교는 1912년 첫 종소리를 울렸다. 1912~1914년 회원학일(檜垣鶴一), 1915~1921년 전변평일(田邊平一) 등이 교장을 지냈다. 특히 1919년 3월 25일, 제2회 졸업식 날 삼천포 장날과 겹친 이 날은 특별한 역사로 기록된다.
졸업식에 참석한 학생들은 일본인 교장 전변평일의 교육칙어 낭독을 신호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기로 했으나, 흥분한 학생들은 졸업식을 기다리지 않고 간부학생 박상윤(朴相潤)·박종대(朴鐘大) 등을 선두로 교문을 박차고 나가 만세 함성을 질렀다. 이 날의 함성은 삼천포 3·1 만세시위의 서막이 되었다.
이 학교는 1925년 삼천포심상고등소학교로, 1941년 삼천포국민학교로 이름을 바꾸며 1952년까지 이어졌으나, 해방 후 정확한 폐교 시기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노산공원 바다를 마주한 교정에서 울리던 종소리는 그렇게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았다.
한편 현 삼천포초등학교는 1917년 3월 4년제 삼천포보통공립학교로 문을 열었다. 1926년 삼천포보통학교, 1938년 삼천포일출심상소학교, 1941년 삼천포일출국민학교, 1950년 6월 삼천포국민학교, 1996년 3월 삼천포초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며 오늘날에 이른다. 1910년 사립보통학교 인가를 받은 이 학교는 장응상의 광명의숙에서 시작된 121년 교육의 맥을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다.
김진식 논설위원 사천향토사 연구가 2026년 10월 15일 10시 13분 Copyright (c) 1999 사천신문 Co.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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