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 -

오랜 겨울 가뭄 끝에 연이틀 내린 비로
겨우살이풀들이 머리를 다듬고
따사로운 햇볕이 아이들을 불러냈다
진료소 계단에 걸터앉아서
대산댁 여식 둘이 동전놀이를 한다
햇살이 계단으로 굴러 내려
십원짜리 동전이 된다
쥐똥나무울타리에 앉은 새 한 마리가
봄을 쪼아 물고 노래한다
겨울 가뭄으로 굶주렸던 길섶에는
집으로 돌아간 영임이 말임이의 재잘거림이
노오란 새순으로 돋아나고 있다.

“지난 1996년에 이러한 시들을 마무리 해놓고서 차일 피일 미뤄 오면서 비로소 지난 3월에 출판식을 가졌다. 모든이들에게 알리면서까지 출판식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그냥 시골 보건소에 근무한지 18년여가 되면서 정든 이웃주민들과의 삶의 여정들을 쉽게 담을 려고 했다. 한 20년 후에 또다른 시집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박구경 시인-

기자가 시인을 만났을 때 보건소 일 때문에 바쁜 모습이었다. 오전내내 환자들을 둘러보고 진료를 해 놓고서 오후에는 마을 잔치가 있어서 들렀다 왔다고 한다. 5일내내 상주근무를 하면서 주말에 잠시 본가에 들렀다가는 북사동 근무처로 돌아온다고 한다.

사천읍내에서 금곡방향으로 6㎞ 정도 가다보면 삼거리에서 만나는 동네어귀의 첫 자락에 위치해 있어 찾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지만 조용한 농촌의 모습은 적막 그 자체였다. 경상대학교 간호학과를 졸업한 시인은 북사동 이곳으로 부임받기 1년전 구 삼천포로 내려와 시댁생활을 시작하다 이듬해에 이곳으로 부임받아 정착하다 싶이 했다.

현재 마루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면서 지난해에는 제1회 전국 공무원 문예대전에서 '진료소가 있는 풍경'의 시로 행정자치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시인은 ‘그냥 이곳에서 근무하면서 보고, 느낀 모습들을 쓴 일기장 일 것이다. 농촌주민들의 삶의 모습들을 쉽게 그려본 것이죠'라며 시집에 담긴 시인의 마음을 전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나뉘어 진료소 주변에 일어나는 농촌의 진솔한 풍경을 시로 담은 시집에 한폭의 수채화라는 표현을 서슴치 않는 이들도 있었다.

-2000년 4월 10일 ~ 4월 16일자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