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신문 1997년 11월 17일∼23일자에 실었던 『할아버지의 손자사랑』 두번째 이야기다. 평소 학원 다녀오는 손자들 마중 나오는 것을 낙으로 삼아 살아오던 할아버지가 안타깝게도 작년 가을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심하지는 않지만 몸 한쪽이 마비가 되어 거동이 불편하게 되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그렇게 좋아하던 일 중의 하나인 손자들 마중 나가기를 중단해야 했다.

그 후, 며느리는 혹시 애들이 시아버지에게 불편함을 끼치지나 않을까 해서 매일 보내던 애들을 일주일에 월·수·목요일 삼일만 보내기로 마음을 정하고 애들을 시댁에 보냈는데 시아버지는 “애들 와 안 보내노. 애들이 집에 오면 너그 어매는 먹을 것도 많이 챙겨주고 내도 안 심심한데..."라며 한마디의 말을 던졌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할머니는 “애들이 장난 심하게 치면 싫다고 해 삼서 뭐 할라꼬 안 보낸다 삿소."라고 툭 쏜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집 안에만 있기가 답답했던지 7살된 손자의 손을 의지하고는 매일 손자들 마중 나왔던 아파트 정문 앞까지 걸어나왔다. 잠시 앉았다가 다시 들어와서는 “오늘 우리 의진이가 내 손을 잡아 조서 아파트슈퍼까지 갔다 왔다 아이가. 우리 의진이가 힘이 참 세다요." 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는 할아버지가 약간 마비가 된 왼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이것을 본 의진이가 “할아버지, 내가 할아버지 손을 그렇게 해 줄게요."라며 오진 손으로 그 큰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는 위 아래로 들었다 놨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회전시켜 준다.

손자로부터 서비스를 받는 할아버지는 기분이 퍽이나 좋아서인지 웃는 얼굴이 꼭 천진난만한 아이와 같았다. “내가 너그들 낙으로 산다."는 할아버지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의진이는 따라서 웃으며 아픈 할아버지의 팔을 힘차게 돌렸다.

할아버지를 극진히 생각하는 의진이를 보고,
“의진아, 할아버지 우리 집에 모시고 살까?"
“그러면 할머니가 심심하잖아요."
“그럼, 할머니도 모시고 살까?"
“엄마, 우리 집 크잖아요."라며 할머니도 챙긴다.

이제 손자들의 마중은 할머니 몫이 되었다. 오늘도 할머니는 학원을 다녀온 손자들에게 원하는 과자와 우유 한 통씩을 손에 쥐어 주고는 집으로 데리고 간다. 거기엔 어김없이 손자들 오기만 기다리는 할아버지가 있다.

-2000년 5월 8일 ~ 5월 14일자 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