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과 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고 흐르는 구름 위로 하늘은 푸르고 높게만 느껴지는 가을날에 문득 밀려오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관한 것이었다.

지난 1995년 90세의 일기로 타계한 한글타자기를 개발한 공병우 박사는 평소 ‘시간은 곧 생명’이라고 말할 정도로 시간의 소중함을 몸소 실천했다. 그는 글을 쓰는 것보다 훨씬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에 한글타자기 개발에 열중했다. 주위로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타자기 개발에 매달린 끝에 1949년 11월 개량형 한글타자기를 개발하는데 성공했으며, 넥타이를 매는 것이 시간 낭비라며 생전에 넥타이를 매지 않았으며, 5분 이상 걸려서 가는 이발소에는 가지 않았다고 한다.

세계적인 철학자 칸트는 일상생활이 시계바늘처럼 정확했다. 그가 산보하는 것을 보고 동네 사람들은 정각 몇 시인가를 알 수 있었고, 심지어 어느 날 밤 취침시간이 3분정도 남았다고 해서 그동안 침대 주위를 거닐었다는 등의 일화도 있다.

반대로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30세가 되었을 때, 제약회사로부터 코카인을 구해 생리작용실험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 무렵 그에게는 약혼자가 있어 한 달에 한번씩 비엔나에서 만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코카인이 국소마비작용이 있음을 발견한 그는 이 작용이 외과 수술에 쓰여 지면 환자의 고통을 덜 수가 있다는 것이 떠올라 그 연구에 미쳐버렸다. 연구가 끝나고 난 후 문득 약혼자와의 데이트 시간을 생각해 보니 벌써 2년의 세월이 흘러간 뒤였다고 한다.

위 세 사람의 시간에 대한 태도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세운 일정표에 따라 어김없이 살아간 공병우 박사와 칸트나, 시간을 잊어버리고 한 가지 일에 미쳐버렸던 프로이트나 다같이 시간을 소중히 여겼으며 내실 있는 삶을 이어갔다는 점이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민족의 명절 추석이, 그 이후 가을에 여문 곡식들을 거둬들이는 가을걷이, 그 다음엔 한해의 시간을 마감하는 12월이 기다리고 있다. 올해 초에 소망하며 세웠던 계획들을 더듬어 보고 남은 시간만큼이라도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을 이루기 위해, 또 다른 계획을 위해 허비되지 않는 시간을 보내자. 그리스의 비극시인 에우리피데스는 ‘시간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시간은 묻지 않았는데도 말을 해주는 수다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