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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칼럼
석종근과 함께 “그림으로 읽는 한자 세상”
한자는 그림문자이다. 현상을 그림으로 그려서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한자를 형상의 그림으로 그려 보는 연습을 하면 현상이 보인다. 여기에는 상징성의 단순화, 철학성의 객관화 ...... 봉화칼럼 전체 리스트 보기
 
 
명작 '등신불'의 산실 다솔사 (2)

주제는 인간 고뇌의 종교적 승화다. 즉 등신불은 人性(인성)과 佛性(불성)이 공존하며, 소신공양은 자기 구원 + 타인 구제라는 것이다. 하여 등신불의 모습이 여느 부처처럼 자애롭지 못한 점은 인간고뇌를 동시에 갖고 있는 증거이며, 소신 행위는 단순한 자기구원만이 아니라 그의 어머니의 원제와 형님의 알 수 없는 인간 고뇌와 업보를 모두 함께 구제하려는 절실한 결의에서 나온 것이다. 소설작품이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명작으로 감동을 받으려면 여러 요건을 갖춰야겠지만 특히 핵심 스토리가 범상하지 않아 충격적이며, 그 충격적 사건을 주제와 결부시키는 소설적 장치가 필요하다 하겠다. 여기서 지은이는 만적의 몸을 태우는 끔직한 이야기를 이야기로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전하는 나' 또한 불교에 귀의하여 佛恩(불은)을 입고자 절실한 각오를 보이는 즉,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쓰는 것은 소극적이나마 죄악의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자기 희생이라는 점으로써 소신공양과 일치시키는 소설적 장치를 절묘하게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김동리 선생의 이력과 연보를 참고할 필요를 느낀다. 작품의 주제는 작가의 인생관과 동떨어질 수 없음을 찾아보기 위함이다.

김동리(金東里) 1913-1995, 본명 시종(始鍾) 동리는 선생의 호이나 일찍이 본명처럼 쓰여 본명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음
경북 경주 생.
대구 계성 중학교 졸업
서울 경신 고등학교 수료
1927년 [조선일보]에 시 <백로(白鷺)>입선.
1935년(23세) [중앙일보]에 단편 소설<화랑(花郞)의 후예(後裔)>로 등단.
상금 50원으로 다솔사로 내려 옴
1937년(25세) 다솔사 전도관에 광명학원이 창설되자 불우 청소년을 교육함
1942년(30세) 일제에 의하여 광명학원이 폐원되고 형 김범부 선생과 다솔사의 주지 효당 최범술 등이 검거되자 선생은 만주 등지로 방황
1945년 사천 청년 회장으로 피선됨
1948년 첫 평론집 [문학과 인간] 펴냄.
1949년 창작집 [황토기] 펴냄.
1951년 한국문총 사무국장 피선, 문총구국대 부대장 지냄.
1956년 아세아 자유문학상 수상.
1957년 [사반의 십자가] 간행.
1958년 [사반의 십자가] 예술원 문학부문 작품상 수상.
1961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피선. [등신불] 발표
1965년 민족문화중앙협의회 부이사장,
1967년 [까치소리]로 3.1문화상 예술부문 본상 수상.
1968년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 [월간문학] 창간.
1970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피선. . 국민훈장 모란장 수상.
1972년 서라벌 예술 대학장 취임.
1973년 중앙대 예술 대학장 취임. [한국문학] 창간.
1978년 장편 [을화] 발표.
1979년 한국소설가협회장 피선. 중앙대 정년퇴임.
1981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 피선.
1983년 5.16 민족문화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피선. 대한민국 예술원 원로회원 추대.
1989년 한국문인협회 명예회장 추대.
1990년 소설가협회장 피선. 7월 30일 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
1995년 타계

필자는 화려한 선생의 경력과 우리나라 문학 예술계에 끼친 영향을 적시하고자 함이 아니라 우리고장 다솔사에 내려온 1935년 23세 때부터 25세에 광명학원 지도교사 이어 만주 등지로 피신했다가 1945년 사천 청년회장이 되는, 우리고장과 깊은 인연을 맺고 그 인연으로 하여 저 유명한 등신불을 창작하는 계기가 되었음이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다. 선생이 우리나라 방방곡곡 유명한 사찰이 많은데 하필이면 다솔사냐 하는 문제와 아울러 다솔사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6세기 초 신라 지증왕 대에 연기조사가 창건한 이래 몇 차례의 중수를 거친 고찰로, 지역적으로 한반도의 남단에 위치한 데다 고색 창연한 숲이 우거져 승려 시인 한용운, 사상가인 김범부, 정치가 김법린, 화가 허백련 등 일세를 풍미했던 인물들이 모였던 곳으로 경남도의 독립투사들의 거점이 되기도 하였다. 선생이 23세 되던 해 이 다솔사로 올 수 있었던 것은 형 김범부씨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며, 그의 일제에 항거하는 애국 정신과 불교적 신앙심의 결과라고 전해진다.

2002년 01월 28일 11시 56분 /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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