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기행(1) 민중의 참모습을 찾어 떠난 벌교 』 -태백산맥의 배경무대 벌교를 중심으로(박종현-시인, 진주삼현여중 교사)
1. 잘못 접어든 길이 가끔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하루 이틀 미루다 보니 끝물 더위가 위세를 떨칠 때에사 문학답사를 하게 되었다. 화요문학의 회원인 수필가 손정란 씨, 시를 쓰는 최숙향 선생님과 박미영 씨 그리고 마루문학회 회원인 하재청 선생님과 함께 떠나기로 했다. 다섯 사람이 타기엔 좀 비좁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공간은 좁을수록 서로가 더욱 긴밀할 수 있어서 좋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하 선생님의 차가 당첨되었다. 남해고속도로로 접어들 때까지도 우리 일행은 들뜬 마음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였다. 화젯거리는 당연히 소설 『태백산맥』이 중심을 이루었다. 읽은지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는 이야기, 1, 2부만 읽고 나머지는 아직 읽지 못했다는 이야기 등에서 시작해 이념과 종교의 갈등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구조 속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세계 등의 내용에 이르기까지 차 내는 이미 열띤 토론장으로 변해 있었다. 모두들 각각의 목소리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오늘의 문학답사를 더욱 의미있게 할 것 같았다.
더위만큼이나 토론이 뜨거워졌을 무렵, 길라잡이로 앉은 필자가 벌교로 빠지는 길을 이미 지나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참이나 더 지난 석곡 인터체인지에서 국도로 빠져나왔다. 초행길엔 늘 기대감과 더불어 불안감을 조금씩 안고 가지만, 길을 잘못 접어든 초행길은 불안감과 초조감으로만 가득했다.
그러나 주암을 지나 송광사로 접어들 무렵, 가로수로 선 삼나무들 때문에 우리 일행은 어느 이국의 농촌에 왔다는 환상 속을 헤매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의 벌교 답사를 축하해 주기 위해 멀리까지 마중나온 잘빠진 삼나무들이 열병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금시에 불안감과 초조감이 사라져버렸다. 이처럼 우리의 삶도 잘못 접어든 길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우리를 반겨준 것은 삼나무 뿐만 아니었다. 가로수가 없는 길섶엔 이 땅의 민중처럼 소박하면서도 아름답게 생긴 부용꽃들이 늦여름의 풍치를 한껏 더해 주고 있었다. 모두들 길을 잘못 접어든 것이 잘되었다고 한 마디씩 던진다. 물론 필자의 무안함을 달래기 위함일 것이다.
삼나무와 부용꽃이 열어 놓은 길을 따라서 우리 일행이 벌교에 거의 이를 무렵, 작가 조정래가 『태백산맥』을 마무리하면서 한 말이 떠 오른다. ‘내가 태백산맥을 쓰고자 했던 첫번째 이유는 분단 극복의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왜곡된 역사 사건들의 수정을 목표로 하였다. 세번째로는 농민을 중심으로 한 민중이 역사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네번째는 사회주의 운동을 정당하게 자리 매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가의 집필 의도를 오늘 필자가 얼마만큼 읽고 갈지는 미지수다. 그렇지만 민중들의 삶의 진실만큼은 역사의 현장에 와서 꼭 한번 읽고 가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염상진, 염상구 형제의 가족사가 우리 사회와 민족사로 확대되는 부편성을 획득했듯이 벌교 구석구석 서린 민중의 아픔들이 우리 민족의 아픔으로 전이되어 온 과정을 찾아 보고 싶다. 한 시대를 살면서 단순한 억울함과 천대만으로 서로 적이 되어야 했던 두형제는 바로 우리 민족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으며, 형이 죽고 난 뒤에사 비로소 후회하는 동생의 모습 또한 지금의 우리들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문학답사를 통해 우리의 정체성도 한번 찾아 보고 싶다. 찾아 오는 길이 힘들고 어려웠던 만큼 필자가 답사길에 오르면서 품은 화두 또한 풀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태백산맥의 무대인 벌교가 떠안은 근대사의 과오를 다시는 이 땅에 자리잡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바람을 안고 벌교에 닿았다.
2002년 02월 25일 12시 00분 / 문화 Copyright (c) 1999 사천신문 Co.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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