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준은 석방된 뒤 이남과 이북을 모두 거부하고 중립국인 인도로 향한다. 간절히 바라던 세상에서 새로운 사람을 꾸려 보리라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절망적인 물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때마침 그가 타고 가는 배를 쫓아오는 두 마리 갈매기가 자신이 사랑하던 은혜와 그녀의 뱃속에 있던 딸(이상 세계에 닿을 수 있다는 희망)이라고 생각한 명준은 그들과 함께 넓은 바다에서 자신이 꿈꾸어 온 삶을 살아가리라는 희망을 품고 바다로 뛰어내린다.' 위는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마지막 부분을 요약한 글이다.
우리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두 개의 이데올로기가 대립하는 분단국가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우리 민족, 우리나라의 정체성(正體性)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잘못이다. 필자는 『광장』의 명준(민중)이 ‘꿈꾸어 온 세계'가 곧 우리 민족의 정체성으로 자리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정체성은 어떻게 형성되어야 할 것인가? 사실 우리나라는 문화면 문화, 종교면 종교, 이념이면 이념 이 모든 것이 우리나라에 닿으면 우리 고유의 정체성으로 자리잡거나 소아(小我)로 전락해 버리기 일쑤였다.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승용차들을 볼 때마다 나는 우리 문화의 소아성을 엿볼 때가 많다. 주차된 승용차의 60~70% 정도가 차안에 염주나 심자가를 소중히 모셔 놓고 있다. 염주나 십자가를 운전석 옆에 걸어둔 것은 자신이 종교인이라는 것을 뜻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인 사라와 자비를 온누리에 펴겠다는 실천의지도 담겨져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의 교통문화를 본다면 앞의 좋은 뜻(대아)은 거의 찾아 보기 어렵다. 내 목숨만 소중하고 보행자나 다른 운전자의 목숨은 염두에 두지 않고(소아) 운전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물론 종교의 참된 가르침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참된 기독교인, 참된 불교인들도 우리 주변에 많이 볼 수 있지만 종교인이면서도 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니지 못한 채 자신의 기복(祈福)만을 위해 종교인이 된 사람도 많은 것 같다. 다종교 국가로서 종교의 참된 정체성을 뿌리내리지 못하고 종교가 소아(小我)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느낌이 없지 않아 정말 안타깝기까지 하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종교면에서도 정체성을 확립해야겠지만 문화나 이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나라는 모든 문화, 이념, 종교의 귀찾기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철학 부재와 자기 문화에 대한 소신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통치자(왕이나 대통령)의 이념, 종교가 민중의 그것에 막대한 영향을 준 것도 그 원인의 하나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의 정체성은 지금까지처럼 지배(통치) 논리에 의해 인위적으로 그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민중의 문화가 그 바탕이 되어 스스로 정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조정래 『태백산맥』에서 민중의 고뇌가 우리 민족의 정체성에 접근하는 하나의 도화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