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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중세의 도시 피렌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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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스위스를 출발한 열차는 저녁이 다되어서야 이탈리아 피렌체에 닿았다. 하루 종일 열차의 덜컹거림에 몸을 맡겨 온 터라 배낭과 악기가 더 무겁게 느껴진다. 더군다나, 스위스의 상쾌한 공기와는 다르게 후덥지근한 공기와 지저분한 거리가 몸을 더 무겁게 한다. 그렇게 우리는 터벅터벅 민박집을 향해 피렌체의 재래시장을 걷고 있었다. 맨 앞에서 민박집 주인아저씨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걷고 있는데, 뒤따라오는 사람이 안 보인다. 돌아보니 사람들이 가는 길을 멈추고 뭐라고 떠들어 대고 있었다.
“어! 성우 아저씨”
참 우연이라는 건 신기한 것이다. 체코에서 그리고 오스트리아에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성우 아저씨를 이탈리아 피렌체에 만나게 될 줄이야. 특히 성우아저씨는 오스트리아 이후로 우리와 루트(Route)가 달라서 다시 만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이런 우연함에 그 반가움은 배가 되었다. 이내 사람들 얼굴에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알고 보니 성우아저씨도 우리가 묵을 민박집에 묵고 있단다. 우리는 반가운 마음에 하루 종일 다물고 있던 입으로 즐겁게 떠들어 대면서 민박집으로 향했다.
민박집으로 돌아오니 반가운 소식이 하나 더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한글전용 인터넷이 되는 민박집에서 메일확인을 했더니, 하나누나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누나도 우리와 헤어지고 난 후에 우리가 너무 보고 싶고, 우리와 같이 지내던 날들이 너무 그리워서 일정을 앞당겨서 이탈리아로 오기로 했단다. 아마도 로마에서 하나누나를 다시 볼 수 있을 듯 하다.
어제의 용사들이 뭉친 술자리에서는 체코에서 그랬던 것처럼 여행객으로서 오랜만에 즐거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저씨도 다음 목적지가 우리와 같은 로마여서 같은 민박집에 묵기로 하고 하나누나도 그곳으로 오라고 할 작정이다. 이렇게 여행을 하면서 좋은 인연을 만든 사람들은 숙소를 같은 곳으로 정하면서 만남을 계속 이어가곤 한다. 다시 막바지에 접어드는 여행이 활기 차 지기 시작하는 것 같다.
뒷날 아침 일찍 성우아저씨는 피사를 들러 로마로 가기위해 피렌쩨를 먼저 떠났다. 물론 이번에는 로마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헤어짐이 아쉽지가 않다. 우리는 어제 저녁 늦게 피렌쩨에 와서 저녁에 잠깐 돌아보기만 해서 반나절은 피렌쩨에서 보내기로 했다.
평일의 피렌쩨였지만 세계적인 관광도시인 만큼 관광객들로 좁은 시내가 붐볐다. 피렌쩨는 14세기부터 15세기까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발달한 도시다. 거의 유럽의 르네상스를 피렌쩨가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리고 이 도시는 그 화려한 중세 시대에서 더 이상 발전하기를 포기 한 채 중세시대의 그 찬란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도시는 그대로 시간을 멈추고 미래의 사람들만 지나다닐 뿐이다. 우리나라처럼 생산에 열을 올리지 않으면 굶어 죽을 것같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조상이 물려준 유산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기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여기 사람들의 얼굴에는 이유 있는 여유가 항상 묻어 난다.
오늘 우리의 피렌쩨 관광의 주안점은 피렌체 두오모에 오르는 것이다. 14세기 대표적인 건축물로 성당과 지붕인 돔과 종탑이 각기 몇 십 년씩 다른 시대에 다른 예술가에 의해 지어졌는데도 그 조화가 완벽하리만큼 아름답다. 특히 성당 지붕인 두오모는 돔형태를 하고 있는데 그 당시에는 돔으로 지붕을 만드는 것이 획기적인 것이었다고 한다. 특히 두 남녀 작가, 츠치 히토나리와 에쿠니 가오리가 쓴 일본소설 ‘냉정과 열정사이’가 여기 피렌쩨를 배경으로 쓰여 졌는데, 우리는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 책을 서로 돌려보고 그 감동을 꼭 피렌쩨에서 직접 느껴보자고 벼르어 왔던 터였다. 땡볕에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리려서야 피렌체 두오모에 오를 수 있었다. 땀을 흘리며 몇 백 계단을 오르고 두오모 꼭대기까지 올랐을 때, 눈앞에는 주황색 지붕으로 꽉 찬 피렌쩨의 전경이 펼쳐 진다. 소설속의 남자 주인공이 여기에서 여자 주인공을 기다리는 것처럼 나도 두오모위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싶었다. 그리고 만나고 싶었다. 나는 그 위에서 그렇게 중세의 도시를 내려다 보면서 이렇게 끄적였다.
‘온통 주황색 지붕으로 시내를 꽉 메운 피렌쩨의 모습이 따뜻함과 동시에 편안하게 다가온다. 그 중세의 도시틈 사이로 끝없이 돌아다니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그러고 보면 나도 관광객일 수밖에 없지만 여기 피렌쩨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의 주인공처럼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오늘은 로마로 떠난다. 그리고 로마에서 하나누나를 만날 것이다. 다시 만난다는 확신 때문에 이제 더 이상 그리운 감정에 나를 가두지도 않아도 될 거 같다. 여기 피렌쩨의 모습처럼 이제 여행도 편안해진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 속의 모든 것을 비우고, 새로운 것으로 채우고 싶다. 지금까지 나를 왜곡하고 과장했던 거짓된 모습을 버리고 진실 되고 싶다. 진실하게 사는 자. 그 사람이 가장 행복할 듯싶다. 그리고 내 속으로 조용히 침잠하고 싶다.’
로마로 향하는 기차 안. 지금까지 기차 이동과는 다르게 서 있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빈다. 무거운 짐과 무더운 날씨로 짜증이 날 법도 하지만, 가만히 출입문에 쭈그려 앉아서 창밖의 경치를 보는 것도 즐겁다. 아마도 만남의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기차는 ‘두근두근’ 거리며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인 로마로 치닫고 있었다.
2003년 07월 24일 11시 51분 / 종합 Copyright (c) 1999 사천신문 Co.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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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