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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칼럼
석종근과 함께 “그림으로 읽는 한자 세상”
한자는 그림문자이다. 현상을 그림으로 그려서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한자를 형상의 그림으로 그려 보는 연습을 하면 현상이 보인다. 여기에는 상징성의 단순화, 철학성의 객관화 ...... 봉화칼럼 전체 리스트 보기
 
 
구계서원 춘향제 봉행

▣ 구계서원대관대유계회(회장 하만길)는 구계서원 춘향제 봉행을 아래와 같이 실시한다.
o 일시 :
2004. 3. 19(금) 11:00
o 장소 : 구계서원(사천읍 구암리 소재)
o 참여인원 : 80여명
o 헌관
- 초헌관 : 사천시장
- 아헌관 : 오필근(사천문화원장)
- 종헌관 : 김종민(농협중앙회 사천시지부장)
o 참고사항(구계서원-도지정 문화재자료 제40호)
구계서원은 명종 때 높은 벼슬을 두루 거친 문신이자 학자인 구암 이정(龜岩 李楨) 선생을 기리고 향사하기 위하여 건립한 것이다. 처음은 이정 선생이 별세한지 40년만인 광해군 3년(1611)에 유도(儒道)를 닦는 학자들과 고향의 마을 사람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향리인 만죽산아래에 구산사란 사당을 지었다. 이후 인조 23년(1645) 2월에는 사당 뜰아래에다 구산사비(龜山祠碑)를 세웠다.
그후 숙종 2년(1676) 4월에는 사천 사림들의 소청(疏請:임금에게 알리어 청함)으로 나라에서 구계라는 액호가 내려 이때부터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다. 그로부터 190여년이 지난 고종 5년(1868) 대원군이 섭정하자 전국에서 사표가 되는 47개의 사액서원을 제외하고 그 나머지 미사액서원은 모두 철폐 당했다. 그러다가 60여년이 지난 1931년 봄에 대관대유계(大觀臺儒溪)의 힘으로 지금의 자리에 서원이 복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63년 12월에 사단법인체로 등록되고, 이어 1983년 8월 6일에 지방문화재 자료로 지정되었다. 현재 서원에는 이정 선생과 대사헌의 벼슬을 지낸 성옹 김덕함 선생 두 분의 위패를 모셔놓은 묘당(사당)과 뜰아래에는 구산사비를 비롯하여 김덕함, 최관 두 선생의 기적비(紀績碑)가 나란히 서 있고, 또 내삼문(금기문)밖에는 동재 서재 풍영루 등의 건물이 있다. 그리고 구산사비에 새겨 놓은 비명은 숙종 때 우의정을 지낸 바 있는 양천사람 미수 허목(許穆)이 지었다. 명(銘)에 가로되 ‘명(冥)은 물에 근심하였기에 제사하며, 용(龍)은 땅에 근실하였기에 제사하노라' 하였다. 사천읍 구암리 산 43번지의 만죽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2004년 03월 18일 12시 01분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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