追憶帳(추억장)을 넘기며 M兄을 그린다

망팔(望八-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접어 들면서 나의 思念들은 과거로만 돌아간다. 또 하나의 귀소(歸巢)본능이다. 이 글은 삼천포 체육발전에 크게 헌신했던 M형에 얽힌 추억담이다.
1945년 2월 싸이판섬 옥쇄(玉碎)등 일제에 패망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을 무렵이었다. 나는 진주사범 입학시험 시력검사장에 수험표를 들고 늘어선 수험생 대열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이 학교 4학년이었던 M형이 불현듯 달려와 나를 손짓했다. 그는 시험 도우미로 나왔던 상급생중의 한 사람이었음을 나중에야 알 수 있었다. 그는 황급히 변소(화장실)로 나를 이끌었다. 급한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살핀 다음 말했다. 너를 맨 앞자리 옆에 앉혀 줄테니 네 차례가 올때까지 시력표의 1,2까지를 모두 외어두라. 하겠느냐고 다그쳤다. 당시 나의 시력은 0.7이었고 그것이 합·불합격의 어떤 기준이 되는지 전혀 관심조차 없었던 터이었다. 영문모르는 나는 엉겁결에 고개만 끄덕였다. 자리에 돌아오니 이내 M형이 나를 맨앞자리 조금 비껴난 곳에 불러 앉혔다. 나는 본능적으로 시력표를 외어나갔고 결과는 1.2 무난히 합격했지만 도대체 M형이 어떻게 내 시력이 약하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지금까지도 모르고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당시만 해도 사범학교라면 전국 도청 소재지에 한 학교뿐이었고 도내의 영재들이 모여들어 각 학교에서는 단 한명이라도 합격을 시켜 대(代)를 이어가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썼었다. 당시의 삼천포 초등학교(당시교명:삼천포 히노데 심상 소학교)는 경남도내(부산포함)에서도 명문의 하나였고 특히 체육과목은 도 지정 연구학교로서 대대로 진주사범입학의 혈통을 면면히 이어가는 자랑스런 학교였다.
鄕土愛가 무엇이던가? 고향의 風光을 사랑하고 고향음식을 즐기며, 출신학교의 긍지를 높이고 고향 말씨를 따뜻이 하며 선·후배를 사랑하고… 이런 人情의 향기가 아니던가?
M형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 그와 나의 인연은 내 나이 일곱살때 시작되었다. 평소 물가에도 못가게 하던 우리 어머니를 어떻게 꾀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헤엄’을 가르쳐 주겠다며 M형은 내 손을 이끌고 팔포해수욕장엘 갔었고 그의 등에 업혀 깊은 곳까지 나아가더니 문득 나를 등에서 내려놓지 않겠는가? 그는 물론 내 주위를 맴 돌며 나를 지켜 보고 있었고 나는 정신 없이 허우적거렸고 이것이 내가 물을 겁내지 않고 수영을 배운 계기가 될 줄이야.
M형은 그후 삼천포에 중학교가 생기자 체육교사로 후진 양성에 종사하였고, 1년에 한 번씩 거시적으로 열렸던 동·서군 대항 운동대회때마다 주도적 역할을 하셨고 그 운동회의 하이라이트인 계주에서는 언제나 최종 주자로 나서서 어린 우리들에게 승리의 기쁨을 안겨 주셨다. 달리기에서부터 각종 구기(球技)에 이르기까지 만능 스포츠맨으로 삼천포 체육계의 큰 별이었던 M형! 참으로 그리운 선배분이시다.
온갖 영화와 명예를 움켜지려던 그 힘들었던 손을 이제사 펴 본다. 거기에 남은 것이 무엇인가?
문득 하늘을 우러러 흘러가는 구름위에 나를 싣는다. 저 무심한 구름따라 내려 가노라면 그리운 고향땅 삼천포, 변하고 인걸은 간데 없고, 아련한 그리움만 심줄같이 남았어라.
2004. 봄날 설동진씀
필자:삼천포초등학교
26회졸업
현 재경노산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