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천신문 ▒▒▒

봉화칼럼

재정준칙에 대한 보고서②
재정은 시민의 주머니에서 흘러나오는 고정물줄기 재원이다. 투자유치나 수출증대로 나오는 재정이 사회간접자원을 늘리는 진정한 재원이다. 그러므로 국가원수나 시장을 제1호 샐러리맨이라 ......

『 어머니 나의 시 』

내 어릴 적 기억으로 나의 어머니는 늦은 밤이면 파도소리를 벗삼아 작은 인두로 아버지의 긴두루막 고름께의 매무새를 다리셨다. 박음질되어 조금씩 흔들리던 부분을 반듯하게 다리시다가 미운 부분 어디쯤에서는 불끈 힘을 주시기도 하셨다. 입안 가득 물을 머금었다가 푸우 푸우 가쁜 물길을 뱉어내기도 하시다가 한참동안 마냥 넋 나간 이처럼 쥐오줌 얼룩진 천장을 바라시다가, 불각시리 방문을 여시곤 하셨다. 환장 할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어머니의 일생은 늘 바람 같은 아버지의 옷자락을 붙들지 못하던 질곡의 세월이었다. 숭숭 구멍 뚫린 어머니의 가슴팍에서는 마른 가을낙엽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런 어머니가 어느새 팔순을 넘기셨다. 가끔은 헛손질도 하시며 또 어느 날은 “니가 뉘냐” 하시며 나의 목젓을 데워 온다. 어느덧 어머니의 긴 외로움의 세월도 끝나가고 이제는 회귀하실 따뜻한 땅의 물길을 가늠하고 계신다, 이런 쓸쓸함, 이런 참담함, 다시 이런 몹쓸 일이 있을까?
어머니는 내 시의 원흉이었다. 낮이면 어머니께서 빨래를 널다가 또 하릴없이 저 멀리로 시선을 보내던, 어머니가 건너오신 저 열사의 사막을 어린 나는 깨금발로 따랐다 비오는 밤이면 이불속에서 부르던 어머니의 가락은 어린 나에게 비보다 더 슬프고 모질어 차라리 무서움이기도 했다. 어머니 대신 아버지를 원망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끊임없이 아버지를 기다리기만 하는 어머니까지 미워하게 되었다. 그 미움과 원망의 줄다리기는 내 안에서 끓어올라 서서히 앓게 되면서 내게 평생 눈물나게 할 시(詩)를 던져 주었다. 그러나 내 나이 삼십의 중반까지 등단의 통과의례를 거치지 못하고 어느 시인의 말처럼 신춘문예를 통과해야 한다는 강박, 욕망, 오기, 흥분으로 똘똘 뭉쳐 어지간히 똥폼을 잡고 댕겼다. 다행히도 7년 전 지방지의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겨우 체면치레는 했으나 늘 나의 문학은 허기지고 차디찬 찬밥 덩어리였다. 막상 등단은 했다고 하나 여전히 나는 문학의 변방에서 어지간히 서러웠고 나의 졸시를 실어줄 친절한 문예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오기와 끈기로 덤벼 중앙문예지(문학과경계사 문학상)에 당선되어 몇 년간의 한을 조금 풀긴 하였다 내 시의 바탕은 어머니가 못다 부르신 기다림의 노래이며, 또한 진한 그리움이다. “쇠방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때마다 그 여자는 참나무 장작을 패서/ 사막의 아궁이로 갔다/ 부지깽이와 함께”(그 여자의 강) 그 여자는 어머니였으며. 어머니는 문패없이 떠돌던 아버지의 사막이었다. 누구도 나의 슬픔을 대신해 주지 못하는 까닭을 나는 내가 가진 가락의 서정성으로 표현하려 한다. 서정은 인간 정신의 본질과 맞닿아 있으며 견디지 못 할 갈등조차도 다 읖조리고도 남을 여백을 대신한다. 시대가 변하고 순수서정만으로 개인적 정서를 담아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해체와 탈코드화 퓨전은 나의 몫은 아닌 듯 하다. 그런 단어를 지껄이고 나면 뒷목덜미가 몹시 당긴다. 그런 것들은 나의 언어가 아니며 내가 다가가야 할 시의 진정성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일런지. 아직도 나는 ‘강아지풀과 느티나무’ 저 야생의 언덕 어디메쯤에서 건져올릴 시어들을, 나의 어머니께서 이불 속에서 풀어내던 그 가락의 뿌리를 찾아 헤맨다. 누구에게나 어머니는 회귀 할 땅의 따뜻한 숲이다. 나의 어머니가 나의 숲이듯이 나는 내 아이들의 숲이어야 할텐데 어쩐 일인지 어머니가 하셨던그 숲의 노릇을 제대로 잘 하고 있지 못한 듯 하다. 숲은 겨울엔 따뜻하게 방을 데울 땔감을, 여름엔 땀을 식힐 시원한 바람을, 봄엔 온 세상을 뒤덮을 찬란한 꽃들을 피어 올려야 하는데 나의 숲은 너무 삭막하고 이기적인 빛깔이 아닌지... 나의 사소한 소리가 혹여 이웃의 담장을 더욱 견고하게 둘러치는 씨앗이 되고 있지는 않는지... 아이들이 점점 자라 어른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나는 아직 나의 어머니의 걸음을 못 따르는 존재다. 아이들과의 팍팍한 하루하루에 짜증과 한숨만을 일삼곤 하는, 나이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자주 어머니의 걸음걸이를 생각한다. 어머니의 긴 밤을 기억한다. 또한 어머니의 노래 같기도, 눈물 같기도 하던 슬프디 슬픈 흥얼거림을 생각한다. 그 어머니께서 지금 병중이시다. 나의 시도 아이들의 시대도 꿈도, 온통 병중이다.

김 경 (시인·마루문학회장,그림내시낭송회회장)
작품집 : 붉은악마

2004년 05월 13일 10시 05분 /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