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척에 두고도 강산이 세번씩 변하도록 무심히 지나친 그곳, 유년과 청소년 시절의 서럽고 그리운 기억들이 한삼 넝쿨처럼 엉켜 있는 진널이, 약숫간, 목섬, 노산 앞 바다가 바로 턱 밑에 펼쳐지는 언덕 비렁끝에 오르기까지 대낮에도 숱한 모기에게 시달려야만 했다.
한내천이 바다와 만나는 팔포 앞 강 미사리 비단결 고운 모래펄에 문주리(문절망둑), 납세미(가자미), 명주고둥, 갯돌 뒤집어 빤쟁이 벌떡게 잡고 자맥질로 진지래기(잘피) 캐어 그 달착 간간한 갈색뿌리를 씹으며 허기를 달래던 소년이 어느덧 지천명(知天命)의 세월 앞에 만상(萬象)이 무상(無常)함을 시큰거리는 무릎과 허리가 증명하고 있다.
명분도 없는 수도(水道)를 사이 하여 바라 뵈는/ 뭍에선 봄 기운이 띠를 둘러 흐르는데/ 세월을 주저앉은 채 한시름 푸는 중이다./ 갈매기 두 어 마리 무심 끝에 오르고/ 다만 손짓으로는 가릴 수 없는 햇살/ 화안한 배추밭 하나 눈썹 위 에 와있다./(박재삼님 “섬에서”중략)
해가 하늘 배꼽 무렵이면 앞 바다에 부서져 내리는 은빛 윤슬, 수천 수만 물 너울의 비늘이 눈물로 반짝이는, 드넓은 들판에 흐드러지게 핀 장다리꽃을 간지럽히는 바람인가.
우리고장 앞 바다의 아름다움을 가장 삼천포답게 노래하셨던 고 박재삼 시인의 시적 모티브(Motive)였던 앞 강 바다…
그 팔포 앞 강 바다가 항구로서 기능과 편리라는 문명 앞에 매립되고 변형되어 이제는 목 섬의 목 밑에까지 무슨 공장이 들어서고 밤이면 휘황한 네온 불빛이 또 다른 꽃밭을 이룬다.
돛폭 바람 가득 안고 썰물 나기 전 바윗돌 선창을 향해 백로보다 바삐 가던 그 돛단배 길은 관념 속에서 존재할 뿐,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을 이럴 때 써야 할까? 박재삼님께 생존해 계시면 이젠 고향 앞 바다를 어떻게 노래 하실까...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개발과 변화라면 이후라도 우리 지역 정서와 특성도 충분히 고려하여 결정 시행했으면...
고향을 멀리서 그리워만 하는 이 들을 위해
우리 모두 살아가는 고장은 있으나 진정한 고향이 없는 실향민일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조 수 현
박재삼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마루문학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