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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질 무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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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고 밤이 오기까지의 시간, 이 순간은 아름다운 시간이다. 밝음과 어두움의 완충지대인 저녁 무렵의 분위기는 왠지 사람의 마음을 달짝지근하게 하기도 하고 서글퍼지게도 하는 묘한 기분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잘 정리된 식탁에 앉아 가벼운 경음악의 선율이라도 들으면서 어두워져 가는 창 밖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은 어느새 사춘기 소녀처럼 고독해지기도 하고 끝없이 허전해지기도 한다. 까닭 모를 원초적인 외로움 같은 것은 아마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근원적인 고독감인지도 모른다.
시간은 우리를 유년 시절에서부터 설흔이 넘은 중년의 나이에 도달케 하였지만, 항상 무엇인가 목말라하고 미친 듯 열중하고 싶은 그 무엇인가를 갈구하며 산다. 언제나 시작은 무엇인가 알 수 없는 미지의 것이기에 얼마나 많은 두근거림과 설레임으로 시작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의 시작과 끝이 있는 삶의 계단을 수없이 건너뛸 때마다 마음은 더욱 더 편안하고 안정되어야 하건만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를 주고 있으니…….
삶의 빛깔이 가장 강렬하고 아름다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유년 시절이리라. 즉 자기가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 아무런 모순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죄의 때가 묻지 않았던 그 시절에는 돌 하나, 나뭇잎 하나, 예쁜 구슬 하나에서도 신기함과 놀라움으로 사물을 느꼈고, 하찮은 병정놀이나 소꿉장난에서도 즐겁고 신이 났었다. 그런 유희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었던 때야말로 바로 천국의 문이 아닐런지. 나이를 먹고 세월이 가면 휠씬 더 멋있고 신나는 일들이 있을거라고 기대하며 꿈꾸어 왔던 미래의 날들이었건만,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그것이 허상의 그림자임을 깨닫기에 우리는 절망하고 슬퍼한다.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유년기 적에의 절망적 향수와 같이 일회성인 우리의 삶이 처절한 의문점을 던져 주기 때문이다.
아이의 말간 눈 하며 통통한 볼과 조그마한 손놀림을 보고 전율하도록 외로움에 젖어 보기도 하는 여자. 항상 여인네는 기다리며 산다. 남자를 기다리고, 사랑을 기다리며, 또 아기를 기다린다. 이러한 기다림의 연속이야말로 우리를 늙지 않은 소녀로 있게 하는 걸까? 저무는 것은 언제나 서글픔을 안겨 준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자체가 서글픔이다. 그래서 해질 무렵의 심정이야말로 불혹의 나이를 머금은 여자의 얼굴 같은 게 아닐까?
과거를 재조명해 보고 살아온 날들을 반성해 보며 짙어 가는 어둠 속에서 슬퍼하고 외로워 보이는 여자의 얼굴. 그러나 저물어 가는 황혼도 아주 아름다운 때가 있다. 금빛 찬란한 색깔로 찬연한 빛을 발하며 사그러져 가듯, 우리의 삶 또한 끝마무리의 진솔한 모습을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삶의 색깔도 결정되어지는 게 아닐런지. 가을이 저물듯 하루도 저물고 우리의 삶 또한 저물어 간다. 저무는 시각, 이 시간에 빈 가슴을 안고 서서 삶의 지혜와 고뇌를 다시금 되새겨 본다.
수필가 최계순
경남 함양 출생
에세이집: 「그대 사랑을 해본적이 있는가」 2004년 07월 29일 9시 34분 / 문화 Copyright (c) 1999 사천신문 Co.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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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