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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칼럼
석종근과 함께 “그림으로 읽는 한자 세상”
한자는 그림문자이다. 현상을 그림으로 그려서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한자를 형상의 그림으로 그려 보는 연습을 하면 현상이 보인다. 여기에는 상징성의 단순화, 철학성의 객관화 ...... 봉화칼럼 전체 리스트 보기
 
 
한번 간호장교는 영원한 간호장교인가?

  처녀시절 국군장병, 중년이후 남편 간병 현대판 열녀
이 애처로운 사연 어디에 비기리...

열아홉 발랄한 규수의 나이에 군인의 꽃 소위(간호장교)로 임관해 20여년간 수많은 장병들의 간호를 도맡아 온 올해 나이 예순다섯살의 ㅈ할머니가 이제는 불의의 사고로 반신불수가 된 남편의 뒷바라지를 4년여동안 해 오고있는 현대판 열여가 있어 화제다.
이름 밝히기를 극구 사양하는 ㅈ할머니(간호장교 소령 전역)는 1959년 19살의 처녀로 진주간호학교(현 경상대학교 간호학과)를 졸업한 그해 5월에 육군 소위로 임관되면서 간호장교가 됐다.
임관된 ㅈ할머니는 육군폐결핵환자요양소(밀양)에 처녀로써, 간호장교로써 처음 근무지에 배속됐다. 새내기 육군소위 간호장교 ㅈ할머니는 63육군병원, 제1야전병원(중위진급), 77육군병원 등을 거쳐오다 청평에 있는 59후송병원에 근무중 1968년 12월에 맹호부대 예속으로 격전지인 월남 파병에 솔선 자원했다.
포연이 자욱한 격전지 월남에서 2년동안 근무한 ㅈ 할머니는 1970년 4월에 귀국, 106 이동병원, 1군 사령부 간호과 행정장교로 근무타가 1974년 부산통합병원으로 전속된 이듬해 고향 부모와 어른들의 중매로 나이 서른일곱에 ㅊ성을 가진 동향인과 늦깍이 결혼을 했다.
결혼한 이듬해인 1976년에 옥동자(지금29세)를 얻고 2년뒤 딸을 얻어 다복한 생활을 영위해 왔으나 딸이 고교 1학년(17살)때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지게 되자 실의에 빠진 ㅈ할머니는 운영하던 음식점을 정리하고 노래방으로 축소해 자위와 위안을 얻으려고 안간 힘을 써왔다. 마음은 아파도 천운이라 생각하고 살아온 ㅈ할머니의 생애가 지금까진 화려하고 순탄했다면 다가올 미래의 역정은 평탄해야 되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ㅈ할머니를 지키던 행운의 여신이 떠났음인지 남은 역경이 더 가슴을 아프게 한다.
노래방을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해 오던 4년전 어느날 외출에서 돌아온 ㅈ할머니는 아연실색하게 된다. 세면장에서 쓰러져 있는 남편 ㅊ씨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쓰러진 남편은 세면장에서 미끄러지면서 오른쪽 뒷머리를 찍어 심한 출혈로 혼수상태였다.
그로부터 2년여동안 병원생활을 했으나 왼쪽 수족이 마비되고, 말을 못하고, 걷지를 못하는 증세는 호전되지 않고 기천만원의 병원비를 충당키 위해 운영하던 노래방을 정리하고 청산할 수밖에 없었다.
기구한 운명에 처한 ㅈ할머니는 10년 전부터 간경화의 증세로 약물치료에 의존해 왔으나 남편의 간병에만 신경써온 나머지 본인의 지병인 간경화 증세가 악화돼 중증으로 진전되어 차츰 굳어져 가고 있다. 시한부 인생이다.
정녕 이들에겐 구원의 손길도 없으며 기적은 오지 않을 것인가? ㅈ할머니는 설상가상으로 생각치도 않았던 증상이 또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따금 요통이 왔으나 참아왔다. 그러나 진단결과 4, 5번 척추가 엉켜붙어(병명 알 수 없음) 움직일 수 없으리만큼 통증이 심해 1년전인 지난해 11월에 수술을 받고 요대를 착용, 남편과 자신의 간병을 스스로 하고 있다.
시한부 인생이면서도 극진한 간병으로 남편 ㅊ씨는 어눌하지만 말을 하게 되고 마비된 수족이 다소 유연해 지긴 했으나 앉은 상태에서 엉덩이를 끌고 다니고만 있다. 열아홉 처녀에서 이순을 넘긴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간호에서 간호로 생을 마감해야 할 ㅈ할머니! 과연 간호사가 천직이었던가?
이런 와중에 ㅈ할머니는 범인(凡人)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용단을 내린다. 10년전인 1994년 12월에 교통사고로 숨진 딸의 안구(눈) 2개를 부산 백병원, 고신대 병원 안과에 각각 기증했고 뼈 모두를 기증했는가 하면(뼈 기증은 우리나라에서 두번째 있는 일이다) ㅈ할머니 역시 죽음에 이르르면 시신을 기증키로 장기기증 본부에 신청해 놓고 있다.
수술전문 교육을 이수하고 수술에만 집도해 오던 제1야전 병원시절 일화 한토막, 환자가 입원하면 ㅈ할머니는 제일먼저 기록카드를 살피는 버릇이 있었다. 어느날 뇌수술환자가 고향 삼천포 사람이었다. ㅈ할머니가 전역하고 음식점 영업을 할 때 군에서 수술받은 姜씨(희미한 기억, 지금 살았으면 65세가량)아들이 찾아와 감사의 인사를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고 말했다.
그러나 ㅈ할머니는 비정함에 대한 아쉬운 푸념을 한다. 남편 ㅊ씨의 형은 부유한 생활을 하면서도 동생이 중병으로 오래동안 두문불출하고 있으나 발길을 끊고 전화한통화도 없이 혈육의 정을 깡그리 단절하고 있다는 것이다. 슬프고 냉정한 일이 아닐 수 없다.
ㅈ할머니는 부부간에 항상 경어를 쓰고 있다. 또 군복을 보면 항상 “고향”같은 푸근함을 느낀다는 ㅈ할머니는 다시 태어나도 간호장교가 되겠단다. 그러나 결코 결혼은 하지 않겠단다. 얼마나 포부가 져서일까?
그러나 사려깊은 ㅈ할머니는 남편의 모든 잘못은 다 용서했단다. 외도와 사업실패에서 온 결별…
시한부 인생인 ㅈ할머니가 먼저 하직하더라도, 잘사는 친인척이 못본체 하더라도 연금 수급의 승계로 반신불수인 남편의 생계를 이어가도록 재결합의 기록을 남겨두고 있단다.
한편 ㅈ할머니는 나와 같이 시신을 기증해 우리나라 의학발전에 이바지 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취재: 이동호 편집이사
4000news@naver.com

사진찍기를 극구 부인해
뒷모습만 보여준 ㅈ할머니

2004년 10월 14일 11시 25분 /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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