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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의 해’ 을유년 띠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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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끝 알리는 힘찬 닭 울음, 다시 한번 희망의 신새벽 열자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지금이야 그 의미가 많이 바랬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이 암울했던 시절 곧잘 인용했던 경구(警句)다. 새벽을 여는 닭의 상징성에 빗대 독재의 종말을 예고한 경구다. 그렇게 힘차게 홰를 치며 ‘꼬끼오'하고 우렁차게 우는 닭의 울음소리는 어둠을 가르고 신새벽을 열었었다. 윤동주도 그의 시 ‘별똥떨어진데'에서 ‘닭이 홰를 치면서 맵짠 울음을 뽑아 밤을 쫓고 어둠을 짓내몰아 동켠으로 훠언히 새벽이란 새로운 손님을 불러온다'고 노래했다. 이육사도 시 ‘광야'에서 닭 우는 소리로 태초의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다. 음력 정월 초하룻날은 닭의 날이었다. 닭은 모든 것의 처음을 뜻하는 동물이었다.
닭과 관련된 창조신화나 난생설화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제주도 무속신화인 천황본풀이 서두에선 닭울음이 혼돈(chaos)에서 질서(cosmos)로 이행하는 우주적 차원의 질서를 예고한다. ‘태초의 혼돈상태에서 암흑이 계속되고 오색구름만 오락가락할 때 천황닭(天皇鷄)이 목을 들고, 치황닭(地皇鷄)이 날개를 치고, 인황닭(人皇鷄)이 꼬리를 치며 크게 우니, 갑을동방에서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는 사설이다.
닭 관련 지명유래에서도 천지창조의 이미지를 읽을 수 있다. 삼국유사 혁거세편에는 ‘왕이 계정(鷄井)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나라 이름을 계림국이라 했다'한다. 창세설화에 홍수설화가 결합한 대표적인 지명유래는 충남 예산군과 홍성군 사이의 닭재산(鷄峯). ‘세상이 천지개벽할 때 온 세상이 물에 잠겼으나, 닭 한 마리만이 이 산에 올라가 살게 돼 계봉이란 명칭이 붙여졌다'는 내용이다. 노아의 방주처럼 대홍수라는 혼돈의 시기에 하늘은 유일한 생명체로 닭을 선택했던 셈이다.
지명과 관련해서는 근세에 만들어진 또 다른 민간 속설이 전해온다. 호남선 기차가 계룡산을 지날 때 곧잘 사고가 났던 것에 대한 속설이다. 닭인 계룡산이 지네인 기차를 쪼기 때문에 사고가 자주 난다는 속설. 기다란 기차는 지네의 상징이고 지네의 천적이 바로 닭이다.
닭은 오래전부터 시대를 함께했던 친근한 동물이라 그 상징성 역시 다양했다.
박혁거세의 부인 알영왕후, 김알지 탈해왕은 닭의 여명이 열어준 난생설화의 주인공들이다. 천마총에서는 수십개의 계란이 든 단지가 출토됐고, 신라의 여러 고분에선 닭뼈가 발견됐다. 알 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듯 재생과 부활의 종교적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고려 왕궁에서는 일명계(一鳴鷄) 이명계(二鳴鷄) 삼명계(三鳴鷄)라 해서 자시(子時)에 우는 닭, 축시(丑時)에 우는 닭, 인시(寅時)에 우는 닭을 함께 길러 그 시각을 알았다고 한다. 시계가 없던 시절 닭울음은 때를 알려주는 알람시계요, 괘종시계였다. 오후 5~7시 유시(酉時)는 바로 닭이 횃대에 오른 시간이다. 흐린 날 오후 주부들의 저녁시간 가름은 닭의 이런 행동을 보고 알았다.
선비들은 닭이 5덕을 갖춘 동물이라고 칭송했다. 머리의 벼슬 모양에서 문(文),발로 상대를 공격하는 모습에서 무(武),적을 향해 돌진하는 용기에서 용(勇), 음식을 보고 동료를 부르는 모습에서 인(仁), 때를 맞춰 새벽을 알림은 신(信)이라 했다. 닭은 머리 위에 볏을 달고 있는 모습이 마치 관(冠)을 쓴 것과 비슷해 입신출세와 부귀공명을 염원하는 선비의 서재에 곧잘 걸렸던 그림 소재였다. 닭의 볏과 맨드라미 모습이 비슷해, 보통 맨드라미와 닭을 함께 그렸다. 관 위에 관을 더하는 것(冠上加冠)으로 최고의 입신출세를 의미했다.
농가에서는 설날이나 대보름날 닭울음점을 쳤다. 꼭두새벽에 첫닭이 우는 것을 기다려 그 우는 횟수를 세어 농점(農占)을 치는 것으로 열 번 이상 울면 그 해는 풍년이 든다고 한다.
닭의 울음소리는 민담의 세계에서는 귀신을 쫓는 구원의 소리였다. 귀신이나 도깨비가 광명과 양기를 알리는 닭 울음소리에 어둠과 함께 물러가면, 곤욕을 치르던 주인공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는 이야기다.
이렇듯 캄캄한 어둠 속에서 여명을 알리는 닭은 상서롭고 신통력을 가진 서조(瑞鳥)로 여겨져 왔다. 그것은 한 시대의 시작을 상징하는 서곡(序曲)이기도 했다. 1945년 을유년(乙酉年)이 일제의 긴 어둠을 뚫고 해방의 힘찬 함성이 울려퍼졌던 해였던 것 처럼 2005년 을유년도 닭울음 소리와 함께 새로운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해 본다. -편집국- 2005년 01월 06일 10시 46분 / 종합 Copyright (c) 1999 사천신문 Co.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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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