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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칼럼
석종근과 함께 “그림으로 읽는 한자 세상”
한자는 그림문자이다. 현상을 그림으로 그려서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한자를 형상의 그림으로 그려 보는 연습을 하면 현상이 보인다. 여기에는 상징성의 단순화, 철학성의 객관화 ...... 봉화칼럼 전체 리스트 보기
 
 
우리고장 출신 독립운동가

신영안(申瑛안)(1899.1.14~1944.7.15)


경남 사천(泗川) 사람이다.
진주농업학교(晋州農業學校) 재학 중 1920년 8월 31일 일본왕의 생일인 소위 천장절(天長節)을 기해 만세운동을 일으키려다 사전 발각되어 피체되었다.
평소 항일의식이 투철하던 그는 3·1운동 이후 재차 독립운동을 전개할 뜻을 가지고 있던 중 일본왕의 생일을 이용하여 진주 일대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키고자 뜻을 같이 하는 문위동(文渭東)·김익조(金益祚) 등과 함께 회의를 거듭하면서 구체적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8월 31일 오후 7시경에 진주 시내의 각 학교 학생들을 동원하여 진주공원과 농업학교 앞, 재판소 앞 등 세 곳에서 일제히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하였다.
이에 신영안 등은 진주 내의 제1, 제2보통학교·광림학교(光林學校)·기독청년회·청년친목회 등 청년·학생들과 긴밀한 연락을 가지면서 거사를 준비하는 한편 학교 등사판을 이용하여 선언서 3백 매를 학교 기숙사에서 몰래 인쇄하였다.
그리하여 거사 전날인 8월 30일에는 모든 준비를 맞추고 거사의 결행만을 남기고 있었는데, 이를 탐지한 일경의 추격을 받아 8월 30일 오후 11시에 발각되고 말았다.
이로써 피체된 그는 학교에서 퇴학처분을 당하였으며, 1920년 10월 15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5년 06월 09일 10시 48분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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