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이 끊겼다? 알코올 급성중독!


의사인 송모씨는 병원에서 회진을 하다 낯익은 환자와 보호자가 중환자실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지인의 가족인 이 젊은 환자에 대해 평소 지병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기 때문에 무슨 병으로 중환자실 신세를 지고 있는지 궁금해진 송씨. 알고보니 술에 취해 도로에서 쓰러져 잠을 자다 교통사고를 당해 수술을 받고 치유중이었다.

중추신경계에 영향, 기억력·판단력 장애 가져와
최근 송씨가 근무하는 창원의 한 종합병원에는 이처럼 창원대로에서 만취해 뻗어 있다 교통사고로 긴급 수술을 하는 환자가 부쩍 늘었다.
가계 경제는 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아 술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이 많아진데다 날씨가 따뜻해지니 만취객들이 도로에 쓰러져있다 불의의 사고를 당하곤 하는 것이다.
이는 만취객과 그 가족에게도 씻기 힘든 상처를 남기지만 차량 운전자 입장에서도 섬뜩하고 황당하기 그지 없다.
“아무리 술에 취해 제 정신이 아니어도 집에는 꼭 찾아간다”며 자신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 누구도 자신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술이다. 술은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미쳐 사고력·집중력·기억력·판단력 등에 장애를 일으킨다.
이런 장애는 술에 취했을 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 술을 마실 경우 대뇌에 영구적인 이상이 생겨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에도 기억력이나 판단력이 떨어진다.
술을 마시는 사람은 “소주 한두잔 쯤이야 어때”라며 쉽게 생각하지만 이러한 것도 엄연히 질환이다. 알코올 급성중독·금단증상·금단섬망·환각증·건망증·치매 등은 알코올이 직접적으로 뇌에 영향을 미쳐 발생하는 정신질환으로, 이러한 상태를 일시적으로라도 경험한 적이 있다면 자신의 음주가 이미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상황에 이르렀음을 인식,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알코올이 일으키는 정신질환에 대해 알아보자.
△알코올 급성중독
신입사원인 백모(24)씨는 동료들이 마련해준 환영회 자리에서 소위 말하는 ‘사발주’를 들이켰다. 다른 입사 동기들도 같이 마신데다 아무 망설임없이 마시고 직원들과 어울렸기 때문에 1차 자리가 끝난 후 백씨가 살짝 2차 자리를 빠지고 집으로 돌아갈 때만해도 동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날 동료들은 백씨가 전날 밤 집에 가서 호흡 곤란 증세를 보여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깜짝 놀랐다.
평소 알코올 의존증이 있는 사람 뿐 아니라 정상적인 음주 습관을 가진 사람에게서도 급성중독은 나타날 수 있다. 단시간에 아주 많은 양의 술을 마셨을 때 겪을 수 있으며 당시의 심리적·신체적 상태도 영향을 많이 미친다. 흔히 ‘만취상태’라며 간과하기도 하지만 술에 취해 판단력이 흐려져 창원대로에 뻗어 자는 사람은 급성중독 증세가 있다고 보면 된다.
급성 중독상태일 때 나타나는 신경학적 징후로는 말이 뚜렷하지 못하고 운동기능의 협응이 안돼 섬세한 일을 하지 못하며 보행시 비틀거리는 증상이 있고 주의력과 기억력의 장애가 온다. 심리적인 징후는 기분이 불안정하고 변덕스러우며 성적인 행동이나 공격적인 행동을 억제하기 어렵고 말이 많아지는 것 등이 있다.
행동의 장애로는 싸움을 하거나 판단력의 손상, 사회적 직업적 기능의 장애 및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는 것 등을 볼 수 있다.
즉 ‘필름이 끊겼다’면 급성중독이라고 생각하면 되며, 이러한 것이 되풀이되면 대뇌의 이상이 장기화·영구화 되는 것이다.
급성 중독 상태의 지속 시간은 마신 알코올의 양과 얼마나 빨리 마셨느냐에 따라 다른데, 대개 음주를 중단한 후 수시간에서부터 12시간 가량 지속된다.
△알코올 금단증상
장기간 지속적인 음주 후 갑자기 술을 중단했을 때 나타나는 징후로 손이나 혀가 떨리고 오심·구토·무기력감·나른함을 느끼며 가슴이 뛰고 식은땀이 나며 불안하거나 우울함·두통·수면장애·악몽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이 징후는 금주 후 곧바로 나타나서 대개 1주일 이내에 없어진다. 간혹 간질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
△알코올 금단 섬망
정신과 전문의들이 알코올 정신 질환 중 가장 심각한 것 중 하나로 꼽는 게 바로 금단 섬망이다. 장기적인 알코올 중독자가 갑자기 음주를 중단하거나 또는 감량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 대개 5~15년 이상 술을 마셔온 사람에게서 나타나며 처음에는 불안·초조·식욕부진·떨림·공포감에 의한 수면장애 등을 보인다.
다음으로 섬망 상태와 함께 자율신경 기능 항진 증상이 있고 떨림·망상·환각·안절부절못하는 행동 등을 볼 수 있는데 특징적으로 이때 환각은 주로 환시로 나타나며 벌레나 괴물 같은 것들이 보여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기도 하고 심한 공포감에 사로잡힌다. 음주 중단 후 1~3일째에 시작해 5~7일에 해소된다. 치료를 받지 않으면 5명 중 1명은 사망하는 응급증상이지만 치료 시설이나 약이 없는 일반 병원에서는 미처 감당하지 못할 우려가 높다.
알코올 중독으로 배회하다 교통사고나 혼자 넘어져 뼈가 부러지는 등의 사고를 당하면 일반 병원의 정형외과나 내과로 이송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때 입원으로 인해 술을 먹지 못하게 되면 금단 섬망 증세가 나타나는데 극심한 환각과 자해로 인해 전문 병원에서는 환자를 묶어놓기도 하지만 이러한 시설과 약이 없는 일반 병원에서는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알코올성 건망증
지속적으로 과음하면 치아민이라고 하는 비타민이 결핍되기 쉬운데 이 때문에 오는 건망증후군이 있다. 주증상은 건망증이며 자기 주변의 시간·공간·인물 등에 대한 인지 능력의 장애, 기억의 결핍된 부분에 엉뚱한 다른 기억을 끼워 넣어 말하는 작화증, 말초신경장애 등을 보인다. 그 외에 소뇌의 이상에 의한 운동 실조증 등의 신경학적 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
△알코올과 관련된 치매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가족에게 버림받고 마산의 한 병원 정신과에 3년째 입원중인 40대 후반의 김모씨는 평소 답답한 병원 생활로 인해 하나부터 열까지 불만투성이인 환자였다. 그런 어느날 의사가 회진을 하는데 평소와는 달리 김씨가 아주 편안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이상함을 느낀 의사가 말을 걸어보니 “입원한지 이제 한달 지났다”고 말하는 등 기억에 장애를 보였으며 그 후 몇 달이 지나도 김씨는 여전히 “입원 한달”이라고 말하는 등 치매 증세를 보였다.
장기적으로 음주를 지속할 경우 일시적인 중독 증상 이외에 비교적 영구적인 상태인 치매가 발생할 수 있다. 초기에는 매사에 의심이 많아져 불안·초조·불면·의처증·의부증이 생기기도 하며 점차 심해지면 다른 치매와 유사한 증상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