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외선 반사 의한 눈화상 ‘설맹’


지난달 말 개봉한 영화 <빅 화이트>는 알래스카 설원을 배경으로 사랑과 욕망의 집착을 블랙코미디로 담아냈다.
주인공에게 닥치는 설상가상의 상황을 풀어내고 있는 이 영화의 제목 <빅 화이트>는 설원을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눈이 멀게 되는 ‘설맹’을 일컫는 말로, 물욕 앞에서 눈이 먼 인간을 빗대 이 제목을 선택한 듯하다.
계절의 절경은 뭐니뭐니해도 설경. 눈꽃이 맺히고 하얀 눈밭이 펼쳐지면 없던 감성도 생겨날 듯 마음은 두근댄다. 물론 최근 호남 지방의 살인적인 폭설을 겪거나 눈을 치워야 하는 사람의 입장은 정반대이겠지만.
눈을 보기 힘든 남부 지방에서는 어쩌다 한번 눈이 내리면 거리는 연인들로 넘쳐나고, 스키장을 찾아 눈밭을 뒹굴거나 눈 덮인 산에 오르고 나면 ‘정말 겨울이다’는 계절감을 만끽하게 된다.
하지만 보기에 아름다운 눈이 사람의 눈 건강에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특히 시력교정수술을 한 사람이라면 상처가 아물 때까지 눈에 무리를 주는 것은 피해야 한다.
◇하얀 눈 때문에 눈 화상
설맹이란 설안염이라고도 하는데, 태양이 내리쬐는 설원은 오랫동안 보고 있을 때 일어나는 일종의 ‘눈화상’이다.
스키장이나 고지대의 설산은 공기가 맑기 때문에 내리쬐는 햇빛 양이 많을 뿐 아니라 전체가 흰 눈으로 덮여 있어 반사량이 많고, 자외선 반사율이 85%에 달해 그대로 노출되면 눈이 상처를 입기 쉽다.
파장이 짧은 자외선은 조직 투과성이 낮아 대부분 피부나 안구 표층에 흡수돼 각막 또는 결막에 염증을 일으킨다.
이로 인해 일시적으로 앞이 안보이게 될 수 있으며 주로 각막 상피에 손상을 일으켜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아프고 시리게 된다.
양쪽 눈 모두 심하게 발병하면 통증과 시력장애로 정상적으로 걷기 힘들어진다.
재작년 5월 에베레스트 등정에 나섰던 우리나라 등정대 중 한 명이 설맹으로 하산하지 못하고 있다는 연락에 구조를 위해 나섰던 동료까지 함께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들을 위해 지난해 엄홍길씨가 시신수습 등정에 나서 박무택 대원을 산에 묻고 돌아왔다.
장시간 노출로 각막 상피 밑의 실질부 손상으로 이어질 경우 영구적으로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
각막 실질부가 손상되면 빛 흡수 기능이 떨어져 자외선을 그대로 통과시켜 2차적으로 망막과 다른 부위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라식·라섹 등 시력교정수술은 상처가 아무는데 몇 개월이 지나야 하는 만큼, 그 동안에 자외선에 심하게 노출되면 자칫 시력이 나빠질 수도 있다. 수술 후 사물이 너무 잘 보인다는 기쁨에 빠져 자칫 눈관리를 소홀히 해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고글을 벗어젖히고 맨눈으로 스키를 타는 것은 ‘화끈하고 폼나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눈 건강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일’이다.
일부 스키 초보들은 흐르는 땀 때문에 고글에 뿌옇게 김이 자주 서려 아예 벗고 스키를 타기도 하지만 설원에 반사된 자외선은 설맹과 백내장을 일으키는 주된 원인의 하나임을 명심해야 한다.
자외선은 수정체에도 영향을 줘 장기적으로 자외선에 노출되면 수정체 중심부에 혼탁이 생겨 백내장이 생길 수 있다. 이는 노인성 백내장과 달라 30~40대의 젊은 층에도 발병할 수 있는 만큼 겨울 산행을 즐기는 중·장년층은 조심해야 한다.
◇치료와 예방
망막 손상이 아닌 각막 화상으로 인한 설맹은 일반적인 경우 눈을 감고 있거나 압박 안대·치료용 콘택트렌즈를 착용하고 진통제를 복용하면 대부분 24시간 이내에 치료되고, 인공눈물을 넣고 휴식만 취해도 일주일 정도면 회복된다.
하지만 이러한 일시적인 설맹과 달리 망막 손상은 치명적이다.
망막의 중심이 화상으로 손상되면 빛의 정보를 시신경으로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행과 스키로 건강을 챙기려는 사람은 동시에 눈건강도 챙기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외선이 강하게 내리쬐는 낮 12시부터 오후 2시 사이에는 특히 조심하는 것이 좋으며, 눈에 이상이 느껴지면 바로 산에서 내려오거나 스키타는 것을 중단하고 휴식을 취해야 한다.
자외선이 차단되는 선글라스나 고글은 필수. 기본적으로 선글라스와 고글은 멋을 위해 착용하는 액세서리가 아니라 눈을 보호하는 ‘보호기구’임을 인식하고 모양보다는 기능을 보고 골라야 한다.
스키 고글은 외부 충격에 쉽게 부러지지 않는 튼튼한 재질인지 살펴야 하며, 자외선을 100% 차단할 수 있는 것, 편안한 착용감, 렌즈 컬러 농도가 70~80%로 너무 진하지 않은 것을 선택해야 한다.
또 렌즈 윗부분의 색이 진하고 아래로 갈수록 흐려지는 이중색 렌즈는 반사 빛을 효과적으로 차단해주는데 한계가 있으므로 피하는 것이 좋고, 야간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은 노란색 렌즈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