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찾기, 수건돌리기, 엉덩이로 이름쓰기, 꼬리잡기. 이는 소풍하면 생각나는 재미있는 놀이이다. 하지만 이런 재미있는 놀이 대신 지난 19일 남양초등학교(교장:박종주) 4·5·6학년 학생들은 좀 더 특별한 보물을 찾기 위해 가을 현장 체험학습을 떠났다. 이름하여 사천시 일대의 문화유적지를 살펴보는 “향토 문화 현장 체험 학습”.
당일 아침 무겁게 내려앉은 뿌연 안개가 일정을 방해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짙은 안개도 아이들의 설레임과 기대를 막지는 못했다.
오전 9시, 버스는 첫 번째 코스인 향촌동 암각으로 향했다. 도지정 유형문화재(제288호)로 지정된 이 암각은 백성들이 왜구의 침탈에 대한 고통과 불안으로부터 구원받기 위한 미륵신앙의 하나인 매향의식의 흔적이다. 매향은 나라의 태평과 백성의 안정을 위해 향나무를 땅에 묻고 그 위에 비를 세워두는 것을 말한다. 이런 매향 의식을 우리 고장에서는 향촌동 매향 암각, 선진 매향비, 곤양 매향비에서 찾을 수 있기에 사천을 매향의 고장이라고 한다고 동행한 문화원 선생은 설명했다. 암각을 보러가는 길이 가파르고 약간 위험했지만, 학생들은 한줄서기를 통해 질서를 잘 지켜 아무 사고 없이 매향 암각을 관찰했다.
다음 목적지는 사천시 대방동에 위치한 대방진굴항. 이곳은 고려시대 이래 우리나라 연안을 빈번히 침범하던 왜구의 노략질을 방비하기 위해 설치된 곳으로 전함의 정박은 물론 조곡 운송선도 정박해 있던 곳이라고 한다. 입구는 좁았지만 안쪽은 넓은 타원을 그리고 있었다. 또한 굴항의 가장자리는 돌담을 쌓아 외부에서는 공원처럼 보였다. “아! 여기에 우리는 배를 숨겨놓았는데 적들은 모르고 들어왔다가 깜짝 놀라 도망갔겠다.” 이런 속임수를 생각해 냈던 옛 선조들의 지혜에 학생들은 감탄을 자아냈다.
그리고 굴항의 언덕에서 바라보는 삼천포 창선대교와 앞바다의 장관이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넓은 바다에 나가 적들을 무찌를 생각을 하며 굴항 속의 전함들은 숨죽이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을 것이다.
삼천포 바다 내음을 뒤로 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다음 코스인 선진리성으로 가는 중 모충공원과 모자랑개를 지나게 되었다. 모충공원과 모자랑개는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이용해 해전에서 왜적에게 승전한 곳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모충공원에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다른 곳의 이순신 장군이 일본의 저주를 위해 남쪽이나 동쪽을 보며 서있는 것과는 달리, 이곳에는 서쪽을 향해 서 있다. 이는 이곳에서 피를 흘리고 싸운 뒤 일본에 승리를 했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이다. 모충공원을 지나 도착한 선진리성은 우리 고장의 해물을 보관했다가 개성으로 보내는 창고의 역할을 했던 곳이다.
그리고 임란때에는 왜적이 침입해 잠복하기도 했으며, 우리 군대의 주둔지이기도 했다. 선진리성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당시 납세를 위해 모였던 해물이며, 여기 저기 숨어서 적을 감시하는 우리 선조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전쟁 중에는 정말 떨려서 잠도 못자고 감시했을 것 같아요.”라며 긴장을 늦추지 않는 학생들의 모습도 보였다. 선진리성은 봄이 되면 벚꽃 축제로 인해 많은 인파가 몰리는 곳이기도 하다. 이제껏 벚꽃 축제 장소로만 봐왔던 곳이 전쟁을 위한 장소였다고 생각하니 학생들은 약간 숙연해지는 분위기였다.
선진리성을 돌고 나오며 잠시 ‘뎅강무데기’라고 불리는 조명군총에 들렀다. 이곳은 정유재란 때 선진리성에 포진하고 있던 왜적을 몰아내기 위해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이 최후의 결전을 벌였다가 희생된 전사자의 넋이 잠들고 있는 곳이다. 먼저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그분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잠시 묵념을 올렸다. 머리나 코, 귀를 자르는 등의 잔혹한 전쟁사를 들으며 학생들은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지만, 용감히 나라를 지키신 선조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함께 가지는 모습을 보였다.
“아~ 우리나라 아닌 것 같아요. 선생님, 저 나무는 뭐예요? 향나무?” 아이들이 내린 곳은 구암리에 자리한 구계서원이다. 구계서원은 구암 이정선생을 기리고 향사를 위해 건립된 사학기관이다. 서원을 둘러보며 아이들은 지금의 학교와 서원의 차이점을 발견하며 재미있어 했고, 어떤 아이들은 직접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글 읽는 흉내를 내기도 했다. “칠판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는데 뭘로 공부했을까?”여기저기서 의문투성이다. 다음으로 찾은 것은 축동 가산리의 마을 어귀를 지키고 있는 가산리 석장승. 석장승은 벅수라고 불리며 마을의 이정표·경계지로서의 기능은 물론 수호신의 역할을 담당했다.
가산마을에는 석장승이 2기가 아니라 8기나 된다. 이는 가산마을이 조운지로서 조창이 폐지될 때까지 해마다 서울에 세곡을 운송했는데, 세곡이 무사히 이르기를 바라는 제사를 많이 지내 그 수가 많다. 석장승이 외계인처럼 무섭게 생겼다는 아이들, 재미있게 생겨서 친근하다는 아이들, 목장승만 보다가 돌로 만든 장승을 보게된 아이들은 석장승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벼 밟지마. 조심해서가.” 곤양향교로 올라가는 좁은 길에 추수를 끝내고 햇볕을 쬐는 곡식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아이들은 까치발로 널려있는 노오란 곡식들을 밟을까봐 한걸음 한걸음 사뿐사뿐 발걸음을 옮겼다. 동재와 서재의 기숙사를 가진 중등교육기관인 곤양향교에는 학생들을 위해 유익한 설명을 준비해 주신 선생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선생님을 따라 대성전, 대성문, 명륜당으로 이동하며 설명을 듣는 아이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해 보였다.
마지막 코스는 다솔사. 크고 우람한 나무와 숲속을 가로지르는 오솔길을 따라 다솔사 입구로 향했다. 산사의 오후는 조용하고 평화로워보였다. 적멸보궁의 부처님을 보고 놀라는 아이들, 사찰의 기와와 기둥, 지붕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는 아이들, 약수물이 흐르는 우물에 동전을 던지고 소원을 간절히 비는 아이들의 모습등. 부처님의 말씀을 가슴속에 새기고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간절하게 자신의 소원을 빌고, 사찰을 유심히 둘러보는 아이들의 모습은 다솔사와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무사히 학교로 돌아오는 길. 그동안 몰랐던 가을의 향기를 차창 밖 풍경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다.
한해의 노고가 영글어 추수만 남겨놓은 황금빛 들판, 멋진 단풍을 준비하고 있는 나무들, 높디 높은 파아란 가을하늘. 문화재를 그냥 둘러보고 마는 그런 행사가 아니라, 문화재의 소중함과 보호의 필요성을 함께 느끼고 돌아온 가을 현장 체험학습이었기에 더 의미가 컸다고 하겠다. 지친 표정보다는 설레임과 기대가 더 컸던 현장체험학습의 추억을 우리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더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