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산”에서 읽는 한 편의 시 』 박재삼기념사업회 회장 시인 정삼조
오늘은 박재삼 시인 서거 10주기를 맞는 날입니다. 세월이 벌써 그렇게 흘렀나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박재삼 시인께서는 그 남긴 시로 해서 우리 마음 속에 깃들어 있고, 늘 우리 곁에 자리잡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10주기를 맞으며, 그분의 시비 ‘천 년의 바람’ 앞에 서서 한 편의 시를 읽어볼까 합니다. 흔히 그분의 대표시로 알려져 있는 ‘울음이 타는 가을강’이라는 시입니다.
이 시는 바로 이 자리에서 그 발상의 싹이 텄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시인께서 사시던 동네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고, 동네를 가로지르는 한내천과 바다가 만나는 장면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기에 시에 나오는 가을강의 모습을 여기서 보시고 그 시를 생각하지 않으셨을까 하고 추측할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저 팔포 앞바다를 앞강이라고 불렀다는 데에서도 그런 생각은 가능할 것입니다. 그럼 시를 보겠습니다.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江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죽은 가을江을 처음 보것네.
시의 겉뜻을 대충 살펴 보겠습니다. 우선, 1연을 산문으로 옮겨 보자면 “마음이 어쩐지 들떠있을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가을 햇볕 속에 걷다 보니 어느새 산등성이에 다다랐고 문득 눈앞에 펼쳐진 가을강을 본 순간 눈물이 났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제 2연은 깜깜한 밤중에 전기불을 훤히 밝힌 제삿날 큰집의 불빛도 참 굉장한 것이지마는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이 그에 못지않게 또는 그보다 훨씬 뚜렷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는 뜻을 말하고 있습니다.
제 3연은 저것 봐 하는 감탄으로 시작하여 무엇보다도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마저 메말라 버린, 이제는 미칠 일만 남아 그 종말인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강을 처음 보겠다는 것입니다.
다음, 속뜻을 생각해 볼 때 이 시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강과 사랑입니다. 강은 흔히 역사라는 의미를 함축합니다. 시간이 끊임없이 흐르듯 강도 끊임없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변화는 강의 흐름과 일치되어 우리 인생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시의 화자는 사랑 또는 인생을 갈수록 서러운, 눈물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 장치는 시의 곳곳에 놓입니다. 우선 가을강의 ‘가을’이라는 계절적 의미와 울음이 탄다고 표현된 ‘노을’의 의미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즉, 강이 사랑 또는 인생을 뜻한다면 가을강은 계절의 기울어가는 때이기에 인생의 종말을 뜻할 것이며 노을 또한 하루의 마감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2연에 나온 제삿날의 불빛도 이러한 의미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계절과 아침·낮·밤은 순환하는 것이지만 사람의 삶은 그렇지 못하다는 데에 인생의 설움이 놓입니다. 한번 지나가 버린 사랑도 시간을 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당연히 돌이킬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인생의 종말인 가을강을 당연히 서러운 것이고 종말이 서럽기에 인생 자체도 결국에는 서러운 것이 됩니다.
여기에 시 ‘울음이 타는 가을江’의 보편성이 놓입니다. 인생의 모습은 설움의 모습으로 될밖에 없는 것, 그리고 그러한 인생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될 때 인생은 분명 ‘허무’한 것이고, 시 ‘울음이 타는 가을江’은 삶의 허무에서 오는 설움을 노래한 것이 됩니다.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이라는 구절은 결국 승복할 수밖에 없을 줄 알면서도 결코 승복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이 시가 애송되는 까닭은 인간적인 이런 처절한 몸부림이 공감을 얻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 ‘울음이 타는 가을강’은 박재삼 시의 많은 부분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삶의 본질적 모습을 보려고 한 것입니다. 가장 인간적이고 정감이 가는 시입니다. 이 시를 다 같이 읽고 음미해 봄으로써 박재삼 시인 서거 10주년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했습니다. 박재삼 시인의 편안한 영면을 빕니다. 2007년 06월 21일 11시 01분 / 문화 Copyright (c) 1999 사천신문 Co.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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