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유모(29세)씨는 얼마전 부모님에게 선물로 드리기 위해 인터넷 쇼핑으로 농산물을 고르던 중 제주산이라는 귤을 샀다. 유씨는 제주도의 특산물인 감귤을 생각했지만 정작 배달된 것은 제주산 감귤이 아니었다.
유씨는 “한 눈에도 감귤이 아니라는 것을 알 만큼 품질이 열악했다”며 “쇼핑몰측에 연락해 환불받기로 했지만 배송비에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원산지 표시 피해 잇따라
이처럼 어이없는 피해를 당한 것은 유씨뿐만이 아니다. 실제로 최근 소비자보호원 등 소비자단체에는 농산물 원산지와 관련된 제보가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들은 “원산지가 불분명하거나 잘못된 경우가 속출, 인터넷으로 농산물을 사는 것이 여전히 불안하다”고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가격이 저렴하고 쉽게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도 좋지만 직접 확인할 수 없는 만큼 불안감도 크다는 이야기다.
시민들의 이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를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은 상당히 모호하다. 인터넷 거래 등 전자상거래를 이용한 농산물 판매가 보편화됐지만 전자상거래에서의 원산지표시 등 관련법률은 여전히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는 등 여전히 허술하다.
농림부에 따르면 현재 원산지표시를 규정한 법률은 농산물품질관리법과 식품위생법, 대외무역법 등 모두 3가지다. 하지만 전자상거래에서의 원산지표시를 별도 규정한 법률은 없다.
그나마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서는 “소비자가 거래 조건을 정확히 이해하고, 실수나 착오 없이 거래할 수 있도록 표시·광고 또는 고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 법률에서도 원산지 표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원산지 표시 ‘구멍’
처벌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전자상거래 원산지 표시에 대한 가이드라인 역시 이러한 맹점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밝힌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중 원산지 표시의무 여부에서는 표시, 광고와 관련된 사항은 기본적으로 표시, 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준용하고 있다.
관련법에 따르면 ‘원산지 표시를 적극적으로 오도할 경우에는 ‘허위 또는 과장된 사실을 알리거나 기만적 방법을 사용해 소비자를 유인 또는 거래하거나 청약철회 등 또는 계약의 해지를 방해하는 행위’로 간주된다.
하지만 이 법률 역시 맹점은 있다.
소비자단체의 한 관계자는 “위 법을 해석하면, 원산지표시를 다른 나라로 하는 등 적극적일 경우에는 행위가 금지되지만 소극적으로 원산지표시를 하지 않는 행위에 대해서는 규제를 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며 “결국 원산지 표시는 자율지침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원산지표시와 관련, 농산물이나 방송광고 등 특별법에 의해 원산지를 표기해야 하는 경우는 있겠지만 인터넷쇼핑몰의 경우 OEM제품에 대한 원산지표시를 해야 하는 의무는 사실상 없는 셈이다.
◇대상 처벌 모두 달라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부 비양심적인 인터넷 판매자들이 이를 교묘하게 악용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 거래를 하면서 안내 게시판에 아예 원산지를 빼 버리거나 허위 원산지를 표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농산물 인터넷 유통 관계자는 “일부 판매자들때문에 많은 판매자들과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고 있지만 법률이 애매해 처벌을 확신할 수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농산물의 원산지 표시를 규정한 기존 법률이 유통 형태에 따라 다른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원산지 표시 위반에 대한 처벌 규정이 각각 달라 처벌하는 측도 받는 측도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실제로 원산지 허위표시 처벌을 규정하고 있는 농산물품질관리법은 모든 농축산물과 그 가공품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식품위생법은 대중음식점 판매 쇠고기와 쌀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반면 대외무역법은 원산지 표시 대상 수입물품의 원산지 표시를 규정한다.
결국 관련 법률들만 분석하면 원산지 표시의 경우 중복되는 대상이 다수 포함된 셈이다.
각 법에 따라 처벌도 다르다. 원산지 허위표시의 경우 농산물품질관리법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대외무역법과 식품위생법은 처벌규정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불과하다.
원산지 미표시의 경우에도 농산물품질관리법과 대외무역법은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도록 하고 있지만 식품위생법은 100만~500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산물 유통 관계자들은 전자상거래가 급증하고 있는 만큼 관련 법률들을 하루 빨리 다듬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농산물 쇼핑몰의 한 책임자는 “농산물 전자상거래와 관련된 피해가 자꾸 발생하면 결국 전체적인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며 “원산지 표시 와 관련된 법률을 대폭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