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아래 덕산에 사는 남명이 어느날 서울로 가다가 어떤 여자와 사랑을 나누었는데, 그 여자가 남명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여 구렁이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조선시대 대학자 ‘남명 선생과 예쁜 처녀와의 사랑’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물론 전해오는 이야기로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엄격한 도덕적 잣대로 불의를 보고 참지 못했던 남명선생은 완벽한 인간으로만 인식되어 왔다. 인간적인, 그리고 민중적인 면모는 우리들에게 좀처럼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런데 남명선생의 인간적인 면모를 알 수 있는 이야기, 즉 설화들이 지리산을 중심으로 많이 전해오고 있었다. 더러 지역적 특색이 가미된 전해오는 이야기에 남명선생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다시 새로운 스토리를 만든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이 지역의 대표적 선비 남명 선생에 관한 이야기는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다.
남명선생이 주인공이 되어 전해오는 이야기들을 정우락 경북대 교수가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 교양총서 10번째 ‘남명과 이야기’이다.
이 책은 3장으로 구성돼 있다.
제1장 ‘신이한 탄생 위대한 죽음’은 남명의 생애와 관련된 이야기가 중심이다. 신화적 상상력이 남명사상과 어떻게 결합될 수 있을까 하는 당혹스런 질문을 던지며 이 장은 시작하고 있다. 제2장 ‘자유와 질서 그 가파른 균형’은 남명의 사상 가운데 포착되는 자유와 질서라는 상반된 두 요소를 주목하면서 이야기를 다룬다. 남명이 사치와 여색을 즐기면서도 이에 엄격했다는 이야기의 진의(眞意)를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제3장‘이런 일 저런 이야기’에서는 일정한 주제로 수렴되지 못한 이야기를 다각도에서 다루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이와 이제신이 쓴 두 편의 남명 약전을 실어 남명 이해에 도움이 되게 했다.
이 책은 남명에 관한 이야기를 9가지 양상으로 구분해 놓았다. 날카로운 지절(志節)과 거대한 기상을 갖춘 인품 이야기, 자득지학(自得之學)을 강조하는 제자관련 이야기, 상보적 경쟁관계를 함의하고 있는 퇴계 관련 이야기, 사대부의 출처대절을 외친 현실 인식 이야기, 이인(異人)으로서 이적(異蹟)을 나타나는 이적이인 이야기, 진주의 한 과부를 중심으로 전개된 음부송사 이야기, 과격하고 준절한 을묘사직소와 연관된 단성소 관련 이야기, 당대 문인들 사이의 지명유래 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정 교수는 “남명의 이야기는 허구적으로 전승된 것이 많다. 이 같은 허구담은 사실이 아니지만 사실 이상의 진실을 내포하고 있어 중요하다. 남명이 서울로 가다가 어떤 여자와 사랑을 나누었는데, 그 여자가 남명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여 구렁이가 되었다든가, 남명이 친구에게 유택을 정해 주었다가 다시 빼앗아 자신이 묻혔다든가, 자신의 처제를 호랑이에게 시집을 보냈다든가 하는 허다한 이야기가 그것이다”며 “이를 통해 언중(言衆)은 역사적 사실을 떠나 어떤 문학적 진실을 전하고자 했다. 남명과 이야기를 결합시킬 때 바로 이같은 점을 충실히 다룰 수 있어 남명 이해를 위한 새로운 길을 연다”고 했다.
한편, 정우락 교수는 남명문학의 철학적 접근, 남명설화 뜻풀이, 남명 문학의 현장 등 남명관련 책을 다수 발간했으며, 현재 사단법인 남명학 연구원 상임 연구위원으로 남명학 관련 연구에 정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