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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칼럼
신뢰와 존경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요즘 언론 매체에는 머릿속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비리 관련 이슈가 많이 나옵니다. 깨끗하고 모범이 되어야 할 일부 지도층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혼탁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 봉화칼럼 전체 리스트 보기
 
 
사천의 역사 인물(3) 정기룡 장군

  정기룡(1562~1622)장군은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곤양 정씨(昆陽鄭氏)의 시조, 곤양출신, 자는 경운, 초명은 무수이고, 호는 매헌이다.
증 호조참판 정철석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호조판서 정의걸이고, 아버지는 증 좌찬성 정호이다.
1580년(선조 13)고성에서 향시에 합격하고, 1586년 무과에 급제한 뒤 왕명에 따라 기룡으로 이름을 고쳤다. 1590년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신립의 휘하에 들어가고 다음해 훈련원 봉사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별장으로 승진해 경상우도방어사 조경의 휘하에 종군하면서 방어의 계책을 제시하였다.
또한 거창 싸움에서 왜군 500여명을 격파하고, 김산 싸움에서 포로가 된 조경을 구출했고, 곤양 수성장이 되어 왜군의 호남 진출을 막았다.
이어 유병별장을 거쳐 상주판관으로 왜군과 대치, 격전 끝에 물리치고 상주성을 탈환했다. 1593년 전공으로 회령부사에 승진하고 이듬해 상주 목사가 되어 통정대부에 올랐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토왜대장이 되어 고령에서 적군을 대피하고 적장을 사로 잡는 등, 큰 전과를 올리고 계속 성주, 합천, 초계, 의령, 고령 등, 여러 성을 탈환,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에 승진하고, 이어 경주, 울산을 수복했다.
1598년 명나라 군대의 총병직을 대행하여 경상도방면에 있던 왜군의 잔적을 소탕, 용양위 부호군이 되고 이듬해 다시 경상우도 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592년에서1598년에 걸친 7년간의 임진·정유왜란에서 아무리 적은 군대를 이끌고도 한번도 왜군과 싸워 져 본 일이 없는 상승장군으로 임진왜란 때 해전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있듯이 육전에서의 충무공에 비길 수 있는 지략과 담력과 무용을 겸비한 장군이다.
왜군이 쳐들어오는 관문에 위치한 경상도가 그나마 다행한 것은 정기룡장군과 홍의장군 곽재우가 경상도 출신으로 소수의 군사로 유격전법을 도처에서 벌여 왜군을 무찔러서 백성을 도탄에 건졌기 때문이다.
1601년 경상도방어사, 이듬해 김해부사, 밀양부사를 거쳐 중도방어사에 오르고, 뒤에 용양위 부호군 겸 오위도총부총관, 경상도병마절도사 겸 울산부사가 되었다.
1610년 상호군에 승진 하고, 그 뒤 보국숭록대부, 1617년 3도수군통제사 겸 경남우도 수군절도사에 올라 통영의 진중에서 돌아갔다. 상주 충렬사에 제향 되고 시호는 충의, 묘는 상주군에 있다.
정기룡장군 출생지가 현재 하동군 금남면 이지만 조선시대 때는 곤양군 이었고 출생지는 사천 이며 성씨의 본관도 곤양으로 하였으나 우리의 향토사는 장군의 업적을 발굴하고 흔적을 찾아 해상에는 이순신장군 육상에는 정기룡장군의 정신을 사천시민들에게 정신적인 지주를 삼도록 해야 되겠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디지탈하동문화대전.

주필 김을성

2019년 06월 06일 11시 34분 /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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