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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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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역사의 인물, 한국불교의 위대한 선사 부용 영관 스님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 온 이후 한국불교를 이끌어 온 스님들은 국민과 나라발전의 토대요 주춧돌 이었다.
백성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그 극복의 현장에는 위대한 선사들이 있었다.
고려말의 태고 보우(1301~1382)국사로부터 법통을 이어져, 백송 지엄의 제자인 부용 영관은 청허 휴정(1520~1604·서산대사)과 부유 선수(1544~1610·사명대사)두 스님의 스승이며, 임진왜란 때 승병장으로 키우시고 조선 후기 승려들이 모두 태고 법통을 형성하게 만들었다.
부용 영관 스님은 을사년(1485)7월7일에 현, 사천시 대포동 심포마을 (개새미)에서 출생했다.
스님은 13세가 되던 경사년 가을에 집에 기르는 개를 돌아보고 “어머니를 잘 보호하고 나를 따라오지 말라. 나는 스님이 되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너는 따라오지 말라고 하면서 개와 이별을 했다.
집을 나와 3년동안 고행선자를 만나 머무르면서 법을 배우고 머리를 깎았다. 이어 구천동에 들어가 손수 초가집을 짓고 9년을 지냈다.
언제나 앉고 눕지도 않았으니 어찌 자리에 누워 편안한 잠을 잤겠으며, 지팡이가 산을 나간 일이 없었으니 어찌 술집의 문 앞인들 지났었겠는가?
스님은 기사년(1509)에는 용문사 조우스님에게 장자 노자를 다 읽었으며, 갑술년(1514) 청평산 학매 스님에게 머무르면서 법을 연구하였으나 배울 것이 없었다.
기묘년(1519)에는 금강산 대존암으로 가서, 조운 스님과 두 여름을 지내고 다시 미륵봉 내원암으로 들어가서 공부를 계속하였으나 세월만 보내면서 소림을 생각했으나 그럭 저력 하다 보니 머리털만 세웠다.
경인년(1530) 가을에 부모님의 은혜를 돌이켜 생각하고 은혜를 갚고자 고향을 생각하고 흰 구름을 바라보면서 크게 한숨 짖다가 남쪽 고향집으로 출발했다.
감회에 젖어 해지는 강 마을에 왔을 때, 스님은 노인에게 절을 하면서 여기가 진촌(스님의 고향) 이냐고 물었다.
노인에게 여기가 제가 때어난 고향입니다. 우리부모님은 제 아버지 성명은 원연이며, 제 아이 때의 이름은 구언입니다.
노인은 스님의 손을 잡어면서 “오늘에야 부자가 만났구나. 네가 나를 버리고 다라난지 30여년 동안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근심과 걱정으로 세월을 보냈는데 지금 갑자기 제 발로 찾아오니 내 소원이 꼭 들어맞았다”고 하였다.
스님은 “출가한 사람은 세상에서 숨음으로써 뜻을 구하고 세속을 바꿈으로써 도를 이루는 것입니다.”라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스님은 늙은 아버지를 하직하고 바로 두류산(지리산)으로 가서 백송사 지엄 대사가 계시는 백송의 문을 두드리면서 “영관이 바람처럼 멀리서 달려 왔습니다. 한번 받아들어 주소서”하니 “영도 감히 오지 못하는데 관이 어디서 왔느냐?”고 했다.
스님이 앞으로 나아가 두손을 모으고 “스님께선 한번 살펴보십시오” 하자. 지엄은 웃으면서 “단련을 받을 만하다” 고 하였다.
부용 영관 스님은 지엄 스님에게 절하고 “참으로 저의 스승 이십니다.” 하며 연신 감탄하였다. 그 뒤로 3년 동안 모셨는데 지엄이 세상을 떠났다.
부용 영관 스님은 호남과 영남 두지방의 속인 가운데 3교에 통탈한 사람들은 모두 스님의 제자이며 저단향 나무를 옮겨 심으면 다른 것에서도 같은 향내가 나는 경이다. 스님은 백송당의 문을 한번 밟은 뒤로부터 황룡산에 있기도 하였고, 팔공산, 지리산 대승동이나 의신동 혹은 연곡동에 머물기도 하면서 어느 세 꿈속의 41년을 지냈다.
융경 신미년(1571) 4월14일 열반에 드시니 세수 87세 법랍은 72년 이었다.
스님의 시자 법융, 영응, 진기, 신웅 스님이 스님의 영골을 거두어 지리산 피아골 연곡사 서쪽 기슭에 부도를 세웠다.
참고문헌
동사열전 역본 김윤세 譯. 김기원교수(청담사상연구소 초대소장).
협동조합 사천향토사연구회 회원부용 영관선사 흔적 조사.

김을성 기자 kimes4000@naver.com

2019년 10월 03일 10시 28분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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