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泗川의 人物(1) 임진왜란 삼룡(三龍) 주몽룡 장군

  사천에 인물이 없다고 한다. 왜 인물이 없다고 할까? “인물이 없다고 탓하지 말고 네가 먼저 인물 될 공부를 하라.” 도산 안창호 선생의 어록에서 나오는 말이다.
사천에서 살면서 사천을 사랑하고 사천을 자신있게 해준 은혜의 땅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사천에 인물이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발전이 안되며, 언제나 개발의 사각 지대로 소외 되어 왔다고 말한다. 맞는 말인지 모른다.
본받을 만한 인물에 대한 지표(指標)가 부족한 사천의 후학들에게, 도산의 말처럼 인물이 될 의욕이나 끈기 있는 노력을 요구하는 시도(試圖)로써 도산의 말씀을 전제(前提)해본다.
이러한 사천의 인물의 빈곤을 극복하고 후학들에게 나마 사천에는 이런 인물이 있었다는 분들을 본지에서 발굴 작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사천에는 조선시대의 구암 이정 선생을 시작으로 많은 분들의 인물연구를 했지만 아직까지 사천에서 출생한 분들의 인물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지역 향토사를 연구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향토사를 연구할 수 있는 향토의 사학자들에게 많은 지원을 해서 사천의 인물을 찾아 후학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될 수 있도록 지원이 있어야 될 것이다.
주몽룡(朱夢龍) 장군
임진왜란 사천해전 때의 인물, 주몽룡 장군, 사천에서 출생 무과에 급제하여 임진왜란때 거제, 문경 조령 전투에서 공을 세워 삼룡이라 불렀다.
삼룡은 곤양군 금양면 중대리(현, 하동군 금남면)출생 정기룡, 강덕룡 장군, 그리고 사천출신 주몽룡을 삼룡으로 불렀다.
주몽룡 장군은 조선 선조 때의 장군, 자는 운중(雲仲), 호는 용암(龍巖),시호는 무열(武烈),본관은 신안(新安), 무과(武科)에 급제, 금산 군수(현, 경북 김천시)가 되어 임진왜란 때 의군을 모집하여 적의 침입을 막으니 적이 감히 가까이 오지 못하였으며, 다시 부장(副將)으로 곽재우 장군과 더불어 영산성의 적을 용감하게 공격하여 공을 세우고, 이어 거제의 적을 협공할 때에 참전하였으며, 강덕룡, 정기룡 등과 더불어 조령(鳥嶺:문경새재)에서 싸워 공을 세우니 세상에서 삼룡(三龍)이라 불렀다.
1602년(선조 35) 역적과 모의하였다는 협의를 받았으나 사실이 없음이 판명되었다. 죽은 후 형조판서로 추정되어 태인 충열사에 모셨다.
주몽룡은 시조 희(熹) 19세손 이자 문간공 인원(印遠)의 12세손 이다. 명종18년(1563) 사천 정동 몽대(夢垈:정동면 장산리 대산 마을)에서 입향조(入鄕祖) 읍의 아들로 9월26일 자시에 태어났다.
몽대란 지명은 용꿈을 꾼 집터에서 아기장수가 태어났다는 일화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지금은 정동면 장산리 대산이라고 부르는 이 마을 뒤에는 태고의 영겁 속에 천금산이 솟아 두르고, 앞들에는 장류수의 장천이 굽이쳐 흘러 배산임수의 전형적 농촌마을 이다.
이 마을에서 지내오는 사이 주 읍( 주몽룡의 부친)의 아내는 오늘 내일 하며 해산의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 읍은 꿈을 꾸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그렇게도 맑던 하늘이 갑자기 검은 먹구름이 몰려들어 온 하늘은 비바람과 함께 하늘의 위력이 삽시간에 뒤덮히고 사방은 암흑천지가 되었다.
그러자 천지를 뒤흔드는 천둥소리와 함께 푸른 빛 영롱한 청룡이 동방에서 부글거리면서 끊어 오르며 집안은 오색구름에 힙싸이는 것이 놀라운 일이라 깨어보니 꿈 이 었다.
꿈에서 상스럽게 보이던 구름은 없어지고 세찬 바람소리만 요란하게 들려왔다. 세상에 이런 희한한 꿈이.... 앞으로 때어날 아기의 장래에 무슨 불길한 징조라도 생각하였지만, 이는 분명히 용꿈이 아닌가?
용꿈을 꾸면 좋은 일이 있을 조짐이라 함은 모르는 바 없는 그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 졌다.
용꿈을 꾸고 낳은 애기를 몽룡이라 지었다. 아기가 태어나자 마을 앞을 흐르는 냇물의 장류수가 흐름을 멈추고 말랐는데, 3일이 지나자 다시 원래대로 흐르는 것이었다.
이같은 이변을 본 마을 사람들은 이인(異人:재주가 신통하고 비범한 사람)아기가 태어난 변고의 탓이라 여기고 길흉에 대한 의견이 엇갈려 야단법석이었다.
옛날에는 반란이나 역모가 자주 일어난 탓에 그 영향으로 이인이 태어나면 외적을 무찌르고 태평성대를 이룰 장재(將材:장수가 될 만한 기량이나 인재)감이라 하여 키울 생각을 하지 않고 태어나는 족족 죽여 없앴다.
그러나 이 아이는 어른들의 걱정에도 아랑 곳 없이 잘 자랐다. 세월은 흘러 몽룡은 어릴 적부터 머리가 총명하고 몸가짐이 신중하여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고 성장 하였다.
몽룡은 9살 때부터 충효에 대한 관심과 뜻을 두었고 문장을 잘했다. 그는 열다섯 되던 해에 옛날 왕자가 노닐었다는 어정산(御停山)을 비롯하여 주위의 아름다운 山水 속에서 헌헌장부(軒軒臧否)다운 호연지기로 자랐다.
어느 봄날, 몽룡은 뒷산 용 바위에 한 마리의 이무기가 나타나 때 아닌 비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괴롭혀 활을 가지고 천금산에 갔는데 과연 듣던 소문데로 비늘이 영롱한 이무기 같은 물체가 바위에 누워 있었다.
몽룡은 가지고 간 활을 쏘았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이무기의 형상은 아니고 은빛 찬란한 한 자루의 대검(大檢)이 영롱한 은회색 빛을 발하고 있었다.
몽룡은 나이 21세 때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 자리에 올랐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용 바위에서 얻은 대검으로 왜적을 무찔러 크게 전공을 세웠다.
참고 문헌: 정동면지. 신안 주씨 종친회. 국사대사전(이홍직 박사 (인물)

본지주필·사천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김을성

2020년 10월 15일 11시 00분 /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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