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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의 역사와 유적지를 찾아서(53) 등신불(等身佛)

  식민지 지배국가의 호명을 거부하며 생명에 대한 자비심과 보살심을 구현하고자 하는 발원의 표명인 혈서‘원면살생(願免殺生) 귀의불은(歸依佛恩)’
‘등신불(等身佛)’이란 사람 키만 한 정도로 만든 불상을 이르는 말로, 만적의 소신공양은 자기 구원과 타인 구제의 양면적인 의미를 갖는다. 즉 자신의 존재 자체가 이복형제에게 고통을 가져오게 된 근원적인 죄의식으로부터 자기를 구원하면서, 동시에 모든 인간들이 가진 숙명적인 고통에 대한 절대자의 자비를 구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김동리(金東里)의 등신불(等身佛)은 1961년 11월 사상계(思想界) 제101호에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고 있으며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김동리는 광명학원 교사시절에 그의 문학의 토양을 완성한 천년고찰 다솔사에서 들은 소신공양(燒身供養) 이야기에 깊은 충격을 받고 그것을 노트에 적어두고 소설화하고자 했지만 실현하지 못했다. 훗날 그 기록을 다시 발견하여 창작 의욕에 불을 붙여 완성하였다.
소설의 이야기는 식민지의 학도병이 탈출하여 목숨을 구하고 정원사에 안착한 내용이다. 액자소설이라고 하는 등신불의 구성을 보면,
발단 : 학병인 ‘나’는 진기수의 도움으로 탈출하여 정원사에 도착함
전개 : 정원사에서 생활하던 중에 금불각을 보고 화려한 외향에 반감과 저항심을 가짐
위기 : 등신불을 보고 충격과 전율을 느낌
절정 : 등신불에 대한 의문과 원혜 대사로부터 들은 만적 선사의 소신 성불 과정,
결말 : 소신과 단지를 통해 본 불교적 인연과 깨달음.
다솔사(多率寺)는 신라 지증왕 12년, 서기 511년에 연기 조사가 처음 창건한 사찰로 그때는 영악사(靈岳寺)였다. 창건 당시부터 따진다면 무려 1,5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경남에서 가장 오래된 고찰이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다솔사의 전각들이 모두 불에 타 소실되었고 숙종 때가 되어서야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광복이 될 때까지 다솔사에는 효당 최범술과 독립지사가 끊임없이 왕래하였으며, 특히 만해 한용운, 김범부, 김법린, 최범술 등이 주거했으며, 소설가 김동리가 등신불이란 소설은 이곳에서 완성되었다.
1937년 최범술 선생이 설립했다가 일제‘기미가요’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봉계마을의 광명학원이 강제로 폐교할 때까지 김동리 선생의 숙소인 다솔사 요사채 안심료(安心寮)에서 매일 10리(4㎞)를 6 년여를 걸어 다닌 길을 사천시는 2년 전에 “김동리(학원 가던)길”로 꾸몄다.
참고문헌 : 김동리‘만해 선생과 등신불’, 나를 찾아서, (민음사, 1997)

문화부장 김진식
kimarami2005@naver.com

2021년 06월 10일 9시 58분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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