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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도자기 장인, 창산요 윤창기 달인 “흙과 물, 불, 바람을 담아야 만들어진다”

  우리나라의 도자기 제조 기술은 세계적으로 뛰어날 뿐 아니라 임진왜란 이후 납치된 조선의 도공 중 다수가 사천지역 출신이라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도자기 장인 중에서도 일본은 차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에 유난히 다기(茶器) 장인이 많았으며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조선의 다기문화도 성장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사천지역의 다기 장인(匠人)이라고 하면 창산요의 윤창기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분명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국제미술대전 도자기부문에서 대상을 차지한 인간문화재급의 도자기 장인이다.
윤창기 선생(72)은 40여년간을 도자기를 만들며 살아왔다. 군대를 제대한 후 인 1978년경 외가인 양산 통도사에서 도자기를 만들던 외삼촌의 조령요 제조장에서 흙과 바람과 불을 다루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사천시 와룡동이 고향인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란 시골마을이고 흙과 익숙했던 터라 도자기 기술을 배우는데도 남달랐다.
외삼촌의 조령요 제조장을 나온 그는 1986년 고향인 사천 와룡골로 돌아와 자신의 도자기를 만들기로 하고 아호인 창산(倉:곳집 창 글자에 山:산이 2개 올라간)을 딴 창산요(사진 참조)라는 이름의 다기를 생산했다.
이곳에서 흙을 빚어서 도자기를 만들고 굽고, 도자기 만들기에 젊음을 다 보내며 꿈을 키웠고 같은 해 처음으로 전국 공예품경진대회에 참가하여 입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는 1996년에는 진주시 경남도 문화예술회관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개인전을 펼쳤고 1999년에는 부산 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된 한·일 문화교류 축전에 출품하는 등 도자기 분야의 거장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윤창기 장인은 드디어 도자기 입문 30년째인 2007년 일본 문화성 주최 국제 미술대전 도자기 부문에서 대상을 차지하며 국내 도자기 명인의 자리에 올라섰다.
이때부터 다기를 주로 만들었던 와룡골 자신의 6개 가마는 쉴 새 없이 돌아갔고 전국의 관광객들이 찾아드는 사천의 명가 ‘창산요’의 이름을 알렸다.
그는 당시 도자기를 주문이 밀려 굽는데도 바쁜 시절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들어 국내의 차 문화가 점차 줄어들고 커피나 인스턴트식품 애호가들이 늘면서 다기를 찾는 인구도 많이 줄었다.
그나마 사찰의 스님들을 중심으로 일부 차 문화를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다기를 찾곤 하지만 그 수도 미미한데다 다기 생산의 타산이 줄어들면서 생활도자기 방면으로 제조라인을 바꾸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일본 등 일부외국에서는 창산요 윤창기 도공의 흰색분청사기가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일명 덤벙 분청사기라 불리며 일본의 경우 호리키 사발이라는 흰색 무늬의 그릇은 일본 전시의 경우 몇 백 만원을 호가하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흰색의 분청사기 그릇은 고려 청자와 조선의 백자가 만들어지기 전 중간 단계에서 주로 사용되던 분청사기 그릇으로 윤창기 자기공이 만드는 호리키 사발은 특이하게 물이 없을 경우는 자기그릇 그대로인데 물이 들어가면 가장자리 주변으로 꽃이 피어나듯 나타나는 꽃 사발로 바뀌는 희귀한 기술을 선보인 도기그릇이다.
일본에서 가끔 전시회를 가지는데 꽤나 많은 호응을 얻는데다 그릇 한 점에 몇 백 만원을 호가하며 팔린다고 한다.
올해는 호리키 사발 전시회를 일본에서 개최 할 계획을 세웠으나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전격 취소한 상황이다.
윤창기 도공은 “도자기 그릇을 만드는데 물과 흙과 불과 바람의 조합이 이뤄져야하는 만큼 모든 기를 모아 정성을 다해야하는 작업이다”며 “우리나라의 세계적인 도자기 만드는 기술이 이제는 사양산업이 돼 안타깝다”고 말하며 “우리의 고유한 것들을 지키고 유지해 나가는 것 또한 귀중한 문화재 보존이다”고 강조한다.
윤창기 도공은 우리의 것을 지키기 위해 장남에게 다기 만드는 기술을 전수하며 국내 명문 도기 만들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창산요 윤바다로 도내 도예작가로 이름을 올린 장남은 대구예술대학교 도예과를 졸업하고 국민대 대학원 도예과 석사과정을 밟는 등 도예공의 길을 걷고 있다.
윤창기 도공의 창산요의 창(倉:곳집 창 글자에 山:산이 2개 올라간)은 한문으로 곳집 창에 뫼산이 2개나 올라가 있는 형태이다. 그만큼 창산요 도자기를 만드는데 산을 넘고 또 넘어야 한다는 의미로 읽혀진다.
어렵고 힘든 길을 걸어 온 것이다.
2010년 세계차홈데크 전시회에서 도자전 도록 첫머리에 실린 그의 자작시가 그의 인생을 말해주고 있다.
길 인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길 없는 길을 걸어 왔습니다/ 흙을 떠다가/ 바람에 불을 실어/내내 길을 비추려 하였습니다/ 오늘도 와룡골 가을 하늘은/ 시리도록 푸르기만 하고/ 앞산은 늘 그만 그만 합니다/
정천권 기자 ckjung8226@naver.com
사진촬영 정천권 기자

2020년 08월 06일 11시 35분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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