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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칼럼
사천이 사라진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 1995년 삼천포와 사천이 통합되어 삼천포라는 지명은 지상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 삼천포는 건재하다. 지명이 사라진다고 도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봉화칼럼 전체 리스트 보기
 
 
사천의 역사와 유적지를 찾아서 사천 흥사리 매향비(埋香碑)(9)

  이 글을 통하여 우리 지역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되살아나는 기회가 되길 기원하며 또한 우리지역의 역사와 유적지에 관한 사료나 자료가 있으면 본지로 연락바랍니다.(편집자주)
1.매향비
사천 흥사리 매향비는 보물 제614호(사진 1978.03.08. 지정)이며, 사천시 곤양군 흥사리 산48번지에 있다.
매향비는 향목(香木)을 묻고, 그 사실을 돌에 새겨 세운 비를 말한다. 향목은 오랫동안 땅에 묻어 침향(沈香)을 만들면 향보다 더 단단해지고 굳어져서 물에 넣으면 가라않기 때문에 침향이라고 한다. 불가에서는 이 향을 으뜸으로 여겼다.
흥사리 매향비는 비석으로는 드물게 보물로 지정 되었다. 흥사리 흥속마을 앞을 흐르는 소하천(흑곡천) 건너의 얕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고려말 우왕 13년(1387) 정묘년에 세운 것이다. 국운이 쇠퇴해지자 해안지방의 민중들과 승려들을 중심이 되고, 매향의 주도집단인 향도(香徒)들이 결계(結契)하여 내세의 복을 축원하고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매향의식을 갖고 그 내용을 새겨놓았다.
빗돌의 크기는 높이 160cm, 너비와 두께는 각각 120cm의 규모로 흑운모 화강석으로 된 자연 비석이다.
빗돌의 전면에는 직경 5cm 내외의 전자체(篆字體) 글씨가 17행 204자 세로로 음각 되어 있다. 그러나 오랜 시간동안 비바람으로 마모된 부분이 많은데, 다행히도 판독이 되지 않은 것은 한 글자에 불과하다.
보물로 지정된 이후에는 더 이상의 마모를 방지하기 위해 보호각을 세워 관리하고 있다.
2.내세의 복을 비는 매향의식
매향의식은 향나무를 땅에 묻어 미륵보살을 공양하며 부처 보살이 가는 아주 깨끗한 세상에 왕생하고자 하는 종교의식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향을 불태워서 천상계의 신명을 청해 모시는 것으로만 알고 있는데, 향은 다지 태우는 것만이 아니고 다른 방법으로 신명에게 고하여 알리는 수단이 있는 것을 이 매향의식이 보여 준다.
불교에서는 침향의 냄새를 맡고 향물을 몸에 바르면 오근이 청정하여져서 무량의 공덕을 얻는다고 한다.
이와 같이 매향은 미륵하생경에 근거한 신앙형태로 향나무를 묻었다가 침향을 얻어 그 향연을 매개로 하여 발원자가 미륵세계와 연결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미륵하생경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그때 세존께서 아난에게 말씀 하셨다. ‘먼 장래 이 나라 경계에 사두(계두)라는 성이 있는데, 그 크기는 동서가 12유순이고 남북이 7유순이며 토지가 비옥하고 백성이 번성하여 도시가 서로 이어져 있으리라. 또 성중에는 수광이란 용왕이 밤에는 향비를 내리고 낮에는 맑게 개개하며, 엽화라는 귀신은 그 행동이 법에 수순하여 바른 교훈을 어기지 않을뿐더러 매향 백성들이 잠든 뒤에 온갖 더럽고 나쁜 것을 제거하며 항상 향즙을 땅에 뿌리므로 그 땅에는 늘 향내가 나고 깨끗하리라’.>
고려말 국운이 크게 쇠태해지고, 왜구의 침탈이 극심해지자 사천 해안 지방에서는 승려들과 민중들이 매향의식을 가지게 되누 것으로 보인다.
매향의 주도 집단인 향도 천명이 결계하며 사중의 신도 4천100인과 더불어 대원을 발원하고 침향목 의식을 행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용화삼회를 기다려 내세의 복을 빌고, 위난에 처한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3.사천 흥사리의 매향 비문
현재 국내에서 발견된 매향비(14종) 중 경위나 유래, 또 그 과정을 통해 나타나는 신양형태를 전하는 것은 북한의 고성 삼일포 매향비, 사천 흥사리의 매향비, 충남해미의 매향비 세 곳 뿐이라고 한다.
이 세 곳의 매향비에 나타난 발원 형태는 모두 미륵하생신앙과 연결된다. 미륵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은 석가세상에서 석가를 따르던 사람이라 하는 데 그렇다면 매향당시의 승려와 향도는 연기에 의한 윤회설을 믿고 먼 훗날을 기약하는 것이 된다.
사중(四衆)의 신도 4천여명이 결계하여 침향의식을 치르고 새긴 비문의 내용을 읽어보면 그 당시를 좀 더 가깝게 이해 할 수 있다.
4.천인 결계 매향 원왕문
오묘한 정성공경의 응보를 받고자 한다면 반드시 없어서는 안 될 실행과 소원을 함께하여야 서로 도우게 되는 것이다. 정성으로 닦고 실행하되, 소원이 없어면 그 실행은 반드시 홀로 외로워지고, 소원하되 실행하지 않으면 그 소원은 반드시 홀로 허망한 것이다. 실행이 홀로 외로우면 오묘한 정성 공경을 읽게 되고, 소망이 홀로 어이없고 공허하면 복록이 부족할 것이니 믿음과 소원을 모두 나란히 운용한 연후에 바야흐로 깊은 선과를 얻게 될 것이로다. 소승이 향도 천명과 더불어 크게 발원하여 침향을 땅에 묻고 미륵보살이 하생되기를 기다려서 용화회 위에 세 번이나 모셔 이 매향불사로 공양을 올려 보살핌의 청정한 법음을 듣고 생멸이 따로 없는 도리와 인욕으로 고행의 경지에 이르러 물러서지 아니하고 사람마다 내원에 나기를 빌어 동맹의 결의를 굳게 다집니다. 미륵보살께서 우리의 동맹을 위하여 미리 이 나라에 나시고, 이 약회 위에 계셔서 당신의 법음을 듣게하고 깨닫게 하시니 모두가 구족한 깨달음을 이루어 임금님의 만세와 나라의 융성, 그리고 중생의 안녕을 비옵니다. 달공 고려우왕 13년 정묘 8월 28일 묻고 김용(金用)이 새기고 수안(守安) 글을 쓰다. 기혼·미혼·남녀 불자 도합 4천 100인 대표 대화주 각선(覺禪) 주상님께.
참고문헌: 경남·부산·울산 문화유산이야기(문화재청)

다음 유적지는 삼천포 향촌동 매향암각입니다.

본지주필·사천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김을성

2020년 03월 26일 10시 51분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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