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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과 더불어 살아 온 40년 와심 이계안씨 전시회 수익금 불우시설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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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간 흙과 더불어 모든 것을 걸고 시골에서 자그마한 도예원을 운영하고 있는 와심 이계안(瓦心 李桂安, 58세, 사진)씨가 도예전에서 얻은 수익금 전액을 장애인 복지시설에 쾌척해 한해를 마무리하는 세밑에 듣는 이들로 하여금 가슴을 뭉클케 하고 있다.
이씨를 찾은 시간은 지난 22일 오전11시경, 간밤에 내린 눈이 아직도 군데군데 남아있는 향림도예원을 노크하자 이씨 내외와 막내딸이 반가이 맞아 주었다. 작업복에 흙 손 그대로다. 약60여평의 작업실에는 금명간에 상품화될 미완성의 작품들이 즐비하게 진열돼 있었다. 작업실은 이번에 쾌척한 이씨의 마음만큼이나 훈훈했다.
이씨는 지난 13~15일(3일간) 부산국제신문사 소전시실에서 장애인 복지시설 사랑나눔공동체를 위한 “와심 이계안 도예전”을 가졌다. 평소 장애인 복지에 남다른 관심과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그는 고성군 하이면 봉현리에서 향림도예원(香林陶藝院)을 운영하면서 100여점의 작품을 전시 이번 행사를 가졌다. 여기서 얻은 순수익금 350만원을 고성군 삼산면에 있는 장애자 보호시설에 쾌척을 하게 된 것이다.
이씨는 일찌기 남양동(송포동)에서 태어나 남양중학교를 중퇴하고 (주)남양도기에 5년간 흙과 싸우며 기술을 익히다 나라의 부름으로 월남전까지 참전하고 1971년 마산 수출자유지역에 있던 (주)아리따야끼(有田)에서 7년여간 기술습득이 계기가 되어 서울 구로동에 있는 요업개발실 팀장(미술)으로 11여년간 오로지 흙과 더불어 살아 왔다.
1974년(결혼일 1월 2일) 이웃 진주 출신의 김수연 규수와 중매결혼을 한 그는 딸만 다섯을 둔 딸부자다. 아들 하나만 하는 마음으로 잉태시마다 출산한 것이 다섯공주가 되었단다. 이씨는 못 배운 것이 한이 되어 다섯공주 모두를 대학까지 보내고 스스로도 총회신학대학(서울 사당동 소재)을 졸업하고, 국립경상대학교 최고관리자과정을 이수, 내년에 수료할 예정으로 있고, 2005년도 문화예술부문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씨는 故봉계 김재석 선생을 사사(師事)로 도공의 길도 길이지만, 인생으로써 지녀야 할 겸손과 근면, 진실성을 터득하기에 이르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중국 경덕진요의 많은 작품을 오랜 기간 간직해 오던 윤보선 전대통령의 소장품 중 파손된 작품을 복원해 줘 이씨가 걷는 작품세계에 큰 후원자가 되어 준 것과 일본인이면서도 한국인으로 살아 온 비극의 주인공 이방자 영친 황후에게 도자기 작품을 빚는 것을 지도한 것이 보람되어 기억에 남는단다.
와심선생은 집요한 연구와 체험으로 황토유약을 사용했을 때 가장 환경친화적이고 건강 기능성의 그릇을 제작할 수 있으며, “천목”의 작고 큰 결정모양은 아름다움의 극치라 할 수 있어 황토라는 친환경적인 소재로 원적외선이란 기능까지 함께 추구하게 됐다. 황토의 순기능을 살려 B10물질이 따뜻한 환경에서 최대로 분출될 수 있는 유약을 개발, 황토결정 도자기 그릇을 완성하기도 했다.
한편 이씨는 1985년 삼천포문화원 초대개인전을 비롯, 백상기념관, 경남문화예술회관 개인전에 이어 아시아 미술대전, 일본 제101회 구주산구 도예전 등 국내외에 25여회에 걸친 전시회와 특선 등 많은 상을 받은 바 있고, 지금은 세계미술협회원, 산업미술가회원, 한국미협회원, 삼천포중앙교회 장로직을 맡고 있으면서 특출한 창작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다.
취재: 이동호 편집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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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29일 9시 28분 /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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