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군 곤명면 삼정리 방광동
뒤에 높다랗게 펼쳐진 백마산에 얽힌 전설이다. 신라 말기에 삼정리에서 5리쯤 떨어진 승랑당이라는 절(현재
하동군 소재)에는 소장군이 승려들에게 무예를 연마시키고 있었다. 소장군은 10척이나 되는 키에 발이 석자나
되었고 무예가 출중하였으며, 또 힘은 항우를 능가하는 장사였다. 그는 지금 신라의 국운이 쇠한 틈을 타서
천하를 손아귀에 넣으려는 야심으로 그 절에서 무승을 양성하고 있는 중이었다.
힘이 무르익어 가는 어느 날, 홀연히 백마 한 마리가 산문 밖에서 한번 크게 울었다. 이에 소장군이 나가보니
천하에 보기 드문 명마라 말을 힘껏 포옹하고 갈기를 쓰다듬으며 "나의 웅지를 너는 아느냐?" 물으니 말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군이 말에 올라 한번 채찍을 치니 눈 깜짝할 사이에 탑골 뒷산에 닿는 것이었다. 장군은
천운이 자기에게 이른 것이라 굳게 믿고 무승들에게 천하정벌에 나설 것을 선언하고 삼정리 뒷산에서 천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애마에게 이르기를 "내가 활을 쏘아 화살이 떨어지기 전에 네가 닿으면 나는 천하를 제패할 것이고, 네가
뒤에 닿으면 나의 뜻이 이룩될 수 없으니 너는 내 칼을 받아야 한다" 하였다. 바위 위에서 활시위를 힘차게
잡아당기자 화살은 섬광을 발하면서 서쪽으로 날아갔다. 이와 동시에 백마는 장군을 태우고 질풍같이 달리니
그 빠름이 관운장의 적토마도 상대가 안될 정도였다. 어느덧 말이 고개에 우뚝 섰다. 장군은 말에서 내려
아무리 보아도 화살이 날아오지 않으니 크게 한숨지으며 "하늘은 내게 대운을 주지 않는구나" 하면서 칼을
뽑아 애마의 목을 내리쳤다. 말목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 공중에서 소리를 내며 그때서야 활촉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소장군은 자신의 경솔함을 뉘우쳤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하늘이 준 운은 순간의 판단착오로 사라지고
말았다. 정신을 돌이킨 소장군은 말을 후히 장사지내고 승랑당으로 돌아와 무승들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다.
이런 일이 있은 뒤에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였다하며, 훗날 소장군은 말무덤 옆에 와서 죽었다고 한다. 후인들은
삼정리 뒷산을 백마산이라고 일컫고 또 장군의 화살이 빛을 내면서 지난 마을을 방광이라 하고, 화살이 떨어진
곳을 살고개라 부른다. 승랑당 절터의 산을 지금도 '고승당산'이라고 부르는 것은 '고승랑당(古僧郞堂)'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백마산 산봉에 제단의 흔적이 남아 있고, 장군이 활을 쏠 때 남겼다는 세 척이나 되는
발자국이 역력한 '장군 발터 바위'가 소장군의 전설을 말해주고 있으며, 지금도 말무덤이 그대로 남아있다.
<자료출처:곤명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