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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칼럼
역(易)에 통달한 사람은 점을 치지 않는다(善易者不卜)
1986년 1월 28일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됐다. 7명의 승무원이 탑승해 있었고, 그중에는 최초의 민간 우주비행사 크리스타 맥컬리프도 승선해 ...... 봉화칼럼 전체 리스트 보기
 
 
박재삼, 최송량, 그리고 우보(牛步) 박남조

경남 사천 혹은 삼천포 지역의 정신문화의 상징처럼 된 시인은 박재삼이다.
그의 시세계는 한국의 시조 전통이나 가난과 고통으로 점철된 우리민족 정서인 恨의 감수성에 닿아 있다. 슬픈 사랑 노래인 그의 시는 문학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사로잡는다.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수록된 그의 대표작 <울음 타는 가을강>을 보자.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 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불빛이지만/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저것봐, 저것봐/ 너보다도 나보다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시의 표층구조는 실연의 아픔이고, 보다 깊은 읽기를 시도하면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이별의 숙명 혹은 갈대 같은 인간 존재의 불안정성으로 읽히기도 한다. 이런 주제를 강물이나 가을과 저녁놀로 상징되는 불의 이미지로 적절하게 조화시킨 마법 같은 작품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작품에서 삼천포라는 공간을 전혀 느낄 수 없다. 다른 작품에서는 노산, 팔도, 목섬 등의 삼천포에 관한 구체적인 지명이 나오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공간적 의미보다는 자신의 삶을 궁핍하게 만든 소재들이었다. 그런 공간들을 통해 박재삼은 민족의 보편적인 정서인 한에 다가갔다.
봄이 오는 한려수도/ 뱃길 삼백 리// 동백꽃 피는 사연/ 곳곳에 서려// 겨울 지나 봄이 오면/사랑이 피는/사랑 섬 건너오는 새파란 바다// 갈매기 두세 마리/한가히 나는// 노산 끝 신수도엔/ 노래미가 한창인데// 와룡산 숨어 피는/ 진달래꽃은// 피를 토해 붉게 피는 수채화 한 폭
이에 비해 얼마 전에 노산공원에서 시비가 세워진 최송량 시인의 <삼천포 아리랑>의 전문이다. 이 시비는 필자와 김학명 목사님, 엄종명 재경삼천포고 동문회 회장님의 주도로 건립되었다. 이 작품에서 시적 공간인 삼천포는 한과 비극의 장소가 아니다. 오히려 삶이 생동하는 공간으로 삼천포의 정서를 나름 위트 있고 탁월하게 형상화했다. 시의 본질 중에 하나인 운율과 리듬을 살리기 위해 ‘사량도’ 라는 구체적인 지명을 시적인 언어인 ‘사랑 섬’으로 둔갑시키기도 했다. 이 시는 경쾌한 가락이 유장하게 잘 표현되었다. 시가 노래라는 고전적인 명제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이나 비극미가 바다 사람들의 정서가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 작품이다.
노산 앞 시아섬 등/ 홀로 늙은 외소나무/ 한 겹겹 물에 잠겨/ 벼랑 위 서러운 몸/ 전엇배 뚝딱이는 밤/ 은하에 젖은 향수// 갈바람에 시든 껍질/ 늦새바람 멍든 가지/ 묵조 휘몰아쳐/포말에 눈물져도/ 잔 뿌리 바위틈에 사려/ 또아리 튼 푸른 혼
우보 박남조의 시조 <시아섬 외소나무>이다. 이 작품은 먼저 제시한 두 작품보다 훨씬 앞에 창작되었다. 우보는 1909생이라고 한다. 그 때문인지 시조가 약간 고풍스럽다. 얼마 전 필자는 김학명 선배로부터 <마루문학> 창간에 실린 <우보 박남조의 시론>을 받아 읽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 시론은 삼천포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을 역임한 김진환 선생님의 글이었다.
우보 선생님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완성도 높은 시를 남겼을 줄은 몰랐다. 실제로 그의 시조집 발문을 박재삼이 썼고, 그의 작품에 우보과 관련된 이야기도 나온다고 들었다.
필자의 관심은 그런 문학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작품을 통해 관찰시킨 바다 사람의 강인한 삶의 의지이다. <시아섬 외소나무>는 바다 위에 있는 작은 섬에 뿌리내리고 생존하는 소나무를 의인화한 작품이다. 그 소나무는 비바람, 눈보라, 태풍이 밀려 와도 결코 꺾이지 않는 바다 사람들의 기상과 생존 의지를 탁월하게 형상화하였다. 웅비하는 장대한 힘까지 느껴지는 작품이다. 시아섬 외소나무는 우보가 노산에 올랐을 때도 지금도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바다 사람들은 비극적 자조를 되새김질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다. 박재삼이나 최송량 시들은 문학적으로 가치는 있지만 바다 사람들의 발칙함, 강한 인성, 굳힐 줄 모르는 푸른 바다 정신을 대변하기에는 너무 온화하다. 더구나 우리고장은 유구한 역사를 사랑하는 항구도시이다.
우리는 밟혀도 다시 일어나는 불굴의 정신, 푸른 혼, 더 높은 기상을 우보 박남조로부터 찾아야 할 것 같다.

◇강희진
-경남 삼천포 출생.
-1994년 KBS 드라마 극본공모 당선.
-KBS 다큐드라마 다수 집필.
-2011년 1억 고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
-장편소설 <유령> <이신> <올빼미 무덤> 등 발간
-정치인과 대담집 <그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공정한 경쟁>
-2015년 재경사천시향우회 자랑스러운 사천인상 수상
-2016년 문선초등학교 총동창회 자랑스러운 문선인상 수상

2020년 09월 17일 11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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